[헬스조선·인하대병원 공동기획] 'Global Korea, 우리는 지구촌 한가족 2009'

지난 4일 인천공항 입국장. 등과 허리가 심하게 굽은 중국동포 정훈(12)이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게이트 문을 빠져 나왔다. 아이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2년 전 한국으로 돈벌러 왔던 강봉길(50)-이금선(47) 부부는 뛰쳐나가 정훈이를 껴안고 통곡하듯 울었다.

정훈이는 선천성 척추 기형으로 태어났다. 하나하나 떨어져 있어야 할 척추뼈 한쪽이 모두 붙어 있었던 것. 중국에서 유명하다는 병원은 모두 다녔지만 수술이 어려울 뿐더러 한국 돈으로 수천만원이나 드는 비용 때문에 수술은 엄두도 못냈다. 자라면서 등과 허리는 더 심하게 굽어갔고,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매일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3년 전부터는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찬다고 했다. 굽은 척추뼈가 폐와 심장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수술비 마련을 위해 부부가 한국에 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식당일과 막노동으로 한달에 16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저금했지만 수술비의 3분의 1도 안됐다. 전화 속의 아이 목소리는 점점 힘들어갔다. 그러던 중 한국에 시집 와서 이금선씨 부부를 초청했던 동생 선자(45)씨가 헬스조선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다. 병원 측은 바로 정훈이를 초청했고,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정훈이는 무사히 한국에 입국했다.

정훈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척추 변형은 12년에 걸쳐 '모질게' 변해 있었다. 조규정 정형외과 교수는 "선천성 척추기형이라도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어린 나이에 수술을 하므로 이 정도까지 척추가 굽은 경우는 거의 없다"며 "굽은 척추뼈가 폐와 심장을 심하게 누르고 있어 조금만 더 놔뒀으면 결국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정훈이는 수술을 받았다. 조 교수는 "굽어진 뼈를 톱으로 하나하나씩 갈라내고 척추뼈를 일자에 가깝게 만들어 고정시키는 수술을 했다. 하지만 척추가 변형되어 있던 시간이 길고, 변형 정도도 아주 심해 머리와 다리 두 군데에 나사를 박고 고정시킨 뒤 늘려주는 수술 전 과정을 견뎌야만 했다"고 말했다. 수술을 마친 정훈이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깨니까 엄마가 내 머리에 있는 철사를 만지면서 눈물을 흘려서 기분이 이상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친구들과 똑같이 내가 좋아하는 축구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헬스조선과 인하대병원은 지난 9월부터 다문화가정 구성원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Global Korea, 우리는 지구촌 한가족'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국내 거주 다문화가정 환자 5명이 수술·치료를 받았고, 이번 달엔 해외에 있는 다문화가정의 가족과 친척 6명이 입국해 수술·치료를 받았다.

한국으로 시집온 키르키즈스탄 동포 칼리스칸(31·한국명 김나연)씨의 언니 마이람(37)씨도 이번에 한국에 초청돼 심장병 수술을 받았다. 심장판막질환을 앓고 있는 마이람씨는 키르키즈스탄 현지 병원에서 "몇 달 내에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키르키즈스탄에는 심장 수술을 하는 병원이 없었고, 외국에 나가 수술 받을 형편도 못돼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마이람씨의 수술을 맡은 흉부외과 백완기 교수는 "심장 판막 중 승모판이 심하게 좁아져 혈액순환이 극도로 제한돼 있었다. 조금만 더 놔뒀으면 심부전, 폐부종으로 진행돼 사망할 가능성이 컸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수술을 받은 마이람씨는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얻었다"며 기뻐했다.

그 밖에 양쪽 눈의 심한 백내장으로 2년 전부터 거의 시력을 상실하다시피한 중국인 자오하이롱(70)씨는 5년 전 시집 온 딸의 신청으로 수술을 받고 양쪽 눈 모두 0.8 정도의 시력을 회복했다. 몽골인 린친(23)씨는 무릎 탈구(脫臼) 재건 수술을, 베트남인 웬김비(46)씨는 담낭결석 제거 수술을, 중국동포 최혜복(57)씨는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았다.

헬스조선과 인하대병원은 내년 1월에도 국내외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의 가족과 친척 등 11명을 초청해 수술·치료를 해 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