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탄약(彈藥)비축

〈제5보〉(54~68)=전쟁과 전투는 닮은 듯 다르다. 전자는 전체, 후자는 국지 개념이다. 몇 군데 전투에서 승리해봤자 전쟁에서 패하면 끝장이다. 전체 그림을 보는 넓은 시야만이 전쟁의 승리를 담보해 준다. 이 원리를 바둑만큼 가시(可視)적으로 보여주는 게임이 세상에 또 있을까. 전쟁의 승리를 위해 국지전에서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음을 이 바둑이 보여주기 시작한다.

54는 언젠가는 이렇게 둘 곳. 하지만 바로 패(覇)로 들어간 것은 좀 성급했다. 흑이 55, 57로 버텨오자 백도 부담이 커진 것. 문제는 팻감인데, 흑에겐 상변이란 팻감의 천국이 있다. 54의 대안으로 55자리가 제시됐다. 참고1도 흑 2, 4 다음 6은 무리. 참고2도 6으로 대항해 와도 15까지 멋지게 타개한다. 아무튼 때 이르게 화약고에 불이 붙었다.

장고 20분 만에 60이 떨어졌다. 형식상으론 특공대 투입이지만 팻감 마련 전략이기도 하다. 63으론 평소 같으면 당연히 '가'로 막을 곳인데, 역시 팻감을 의식해 두텁게 철주를 내렸다. 64는 도강(渡江) 방지책. 66, 68의 씌움에서 장고의 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하귀 패에 대비한 쌍방 탄약(팻감)비축 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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