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관왕 김지석 빛바랜 훈장

빛바랜 훈장. 김지석(20)의 세모(歲暮)가 꽤 쓸쓸해 보인다. 그는 올해 첫 타이틀(물가정보배)을 따내는 등 최고의 한해를 보내면서 다승, 승률, 연승, 최다 대국을 모두 휩쓸었다. 기록 4관왕 탄생은 91년 이창호 이래 무려 18년 만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제대회인 농심배 3연승 후 11월 28일 대 셰허(謝赫)전서 패한 뒤 약 한달 간 갑작스러운 이상 기류 속에 1승6패를 기록했다. 그 기간 동안 박정환에게 무려 4연패를 당하며 천원전 패권과 원익배 결승행 티켓을 모두 빼앗겼다. 실속은 놓치고 '허울'만 챙긴 꼴이 된 것.

고(高)승률자는 1패만 해도 백분율이 크게 떨어진다. 막판 1승6패로 헤매고도 71승20패(78.0%)로 승률 1위를 지켜냈다는 건 김지석의 올 한해 활약이 얼마나 눈부셨는가를 말해주는 방증이다. 박정환과의 최종 승률 차는 불과 2.2%. 연승 부문 역시 박정환이 13연승 행진 중 올해가 끝나 추월을 면했다. 보름만 더 주어졌으면 역전도 가능할 분위기였다.

한 동료 프로는 김지석의 '여린 성격'에서 막판 부진의 원인을 찾았다. 발군의 기재로 한번 분위기를 타면 누구도 못 말리지만 흐름을 놓칠 경우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다는 것. 또한 처음 갖는 후배와의 결승전에 대한 부담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절정의 기량을 확인한 만큼 내년엔 알찬 결실을 기대할 만하다는 게 바둑계의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