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2번의 올가미

〈제10보〉(127~140)=좌변 흑과 생사의 기로에서 대치하던 하 중앙쪽 백 11점이 몽땅 사로잡혔다. 패(覇)맛조차 남기지 못 했다. 그렇다면 더 둬 볼 것도 없이 승패가 결정된 게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적을 섬멸하고도 흑이 우위에 서지 못 ㅁ했다니, 바둑이란 정말 그 아득한 깊이를 측량조차 할 수 없는 게임이다. 우선 수상전 와중에 우하귀 백에 힘이 붙었다. 이제 흑 '가', 백 '나' 의 패는 흑도 부담스러워졌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흑이 중앙 백 11점을 잡은 '세금'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점. 백이 이후 버림돌을 이용해 대가를 얻어내는 수순은 가위 예술의 수준이다. 우선 127은 당연. 자칫 130 자리에 두었다간 백 129의 회돌이가 있다. 백도 128, 130이 정수로 맥점이랍시고 참고도 1에 붙이면 2가 좋은 수여서 8까지 죽도 밥도 아니다.

이하 138까지 선수로 좌변을 고스란히 접수했다(물론 '다'의 맛은 남았다). 검토하던 최규병 九단이 "교과서에 실을 만한 기막힌 사석(捨石)전법"이라며 웃는다. 이쯤 되면 흑은 '중앙에서 '되(升)로 주고 좌변에서 말(斗)로 받은 격'이라고 할까. 하지만 백의 싸바르기 작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40이 또 한 번 멋들어진 2차 올가미 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