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눈 앞에서 발레하는 것 같아요"

보경(9)이는 드가(Degas·1834~ 1917)의 〈발레 수업〉 앞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손을 이렇~게 하고 거울을 보면서…." 보경이는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 그림 속의 댄서들 동작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예쁜 언니들이 발레하는 건 TV에서 많이 봤지만…. 그림은 처음 봐요."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꿈의학교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보경이는 30일 센터 친구들과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전시회를 찾았다. 그림 전시회에 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만화가가 꿈인 보경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 타고 오니까 힘들었는데,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보경이와 친구들은 1시간 동안 안내원을 따라다니며 '그림 여행'을 했다.

보경이에게 "가장 좋았던 그림이 뭐냐"고 묻자, 미리 생각해둔 듯 "피카소 물병"이라고 외쳤다. 보경이가 기억하는 '피카소 물병'은 피카소(Picasso·1881~1973)의 〈차 주전자와 컵이 있는 정물〉이다. 보경이는 "물병(차 주전자)을 울퉁불퉁 재미있게 표현해서 신기했다"며 배시시 웃었다.

이날 꿈의학교지역아동센터를 포함, 6개 지역아동센터와 서울 묵동초에서 온 학생 100여명이 《모네에서 피카소까지》전을 감상했다. 평소 문화 체험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 학생들을 무료로 초청한 행사였다. 무료 초청은 새해 1월 7일까지 모두 1000여명의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날 학생들은 3명의 작품 안내인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면서 피카소·모네·마티스·반고흐 등 대가들의 걸작 96점을 만났다.

가장 먼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마네(Manet·1832~1883)의 〈키어사지호와 앨라배마호의 해전(海戰)〉이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프랑스 해안에서 벌어진 해전을 생동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남학생들은 그림에 바싹 다가가 보면서 "진짜 바다 같아", "배가 폭탄 맞았다"고 소리쳤다. 묵동초 최한빈(12)군은 "직접 보고 그린 게 아니고 상상해서 그린 거래요. 대단한 것 같다"고 하더니 수첩에 '남북해전'이라고 메모했다. 최군의 수첩에는 '드가=발레그림', '사실주의' 등이 써 있었다. "다 외우고 싶은데 말이 어려워서…. 자꾸 공부할 게 생겨요."

아이들이 갑자기 '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간 작품은 르누아르(Renoir·1841~1919)의 〈르그랑 양의 초상〉이었다. 전시회 포스터나 티켓에서 소개돼 낯익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서 "몇 살이에요?", "얼굴이 하얗고 예뻐요" 등 한마디씩 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10명의 학생을 인솔해 온 숲속지역아동센터 박재환 센터장은 "아이들에게 문화 체험을 많이 시키려 하지만 이런 좋은 무료 행사가 없으면 접하기 쉽지 않다"며 "오후에는 전시회에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창의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수업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내년 1월 1일부터 3일까지 새해 연휴기간에도 개관한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장 마감 오후 6시). 매주 금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전시한다. 관람료 일반·대학생 1만3000원, 중·고생 9000원, 초등학생·유치원생 7000원. (02)521-73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