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T―뉴스 이진호 기자] MBC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고 있으면 요즘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해리다. 영화 '웨딩드레스'에도 또 한명의 해리가 등장한다. 싱글맘 고운(송윤아)의 딸 소라(김향기)다. 그는 천방지축에 시도때도 없이 '빵꾸똥꾸'를 외쳐대는 버릇없는 해리와 묘하게 닮았다.
소라는 말도 안듣고 결벽증까지 있는 아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엄마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다. 남과는 침이 섞이기 싫어 찌개나 물조차 함께 먹지 못하지만 엄마에게만은 볼에 뽀뽀를 날리는 귀여운 딸이다.
"많은 아역들을 봤지만 김향기는 오히려 아역답지 않은(?) 면 때문에 더욱 정이 간다"는 송윤아의 말처럼 '웨딩드레스'의 김향기 연기는 성인 배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과장되지도 미화되지도 않은 소라의 행동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아이다운 모습이 보인다.
위암 판정을 받은 뒤 딸과 헤어질 준비를 하는 고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인 그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입을 드레스를 디자인한다. 그 옷을 입은 딸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지만, 소라는 엄마가 준비한 선물을 먼 훗날 받아들고서는, "엄마도 내게 선물이었다"면서 미소짓지 않을까?
올해 200만 고지를 넘긴 '애자'처럼 모성을 다룬 최루성 영화다. 하지만 막무가내식의 짜내는 눈물을 강요하진 않는다. 퍽퍽한 인생, 무의미해진 가족간의 정 등 삶의 무게에 굳게 닫혀 있던 관객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두드릴 뿐이다. '왜 (엄마가)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웨딩드레스를 남을 위해 만드냐'는 철없는 아이의 물음 속에서 조용히 미소짓던 고운의 표정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이어 돋보인 권형진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과 곳곳에서 묻어나는 휴머니티는 영화의 큰 미덕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흘러나온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라는 노래가 연인 사이가 아닌 모녀 사이에도 통할 수 있는 가사라는 것이 애잔하다.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를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일깨워 주는 것만으로도 '웨딩드레스'는 충분히 착한 영화다. 조금은 빠른 전개와 가벼운 느낌으로 영화에 무게감을 실어주지 못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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