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반골(反骨)기질

〈제12보〉(151~168)=프로들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패배는 '무난히 지는' 경우다. 형세가 불리한데도 이렇다 할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그대로 밀릴 경우를 말한다. 정확한 형세판단 능력과 함께 불굴의 반골(反骨)기질이 갖춰져야 진정한 승부사로 인정해 준다. 지금 바둑은 중앙 대마를 잡고도 좌하귀가 함락돼 흑이 기분 나쁜 흐름. 흑은 마지막 초읽기 속에서도 얌전히 마무리해선 이길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라는 최후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이 바둑을 마지막 변화의 구렁으로 몰아넣는 승부수다. 하지만 그 대가로 백△의 봉쇄는 이미 각오했던 수. 151·153이 유일한 탈출 수단으로 좌변과의 연결에 성공했다. 154를 생략하면 흑 156으로 넘는다. 선수를 잡은 흑이 157부터 사나운 기세로 백진을 헤집기 시작했다.

157로 참고도 1에 치중하면 백은 패(覇)를 하지 않고 6까지 처리할 참이다. 이렇게 마무리된다면 반면(盤面)으로도 백 승이다. 일단 162까지는 쌍방 최선. 163부터 167까지 타협하면서도 우하귀 패는 서로 곁눈질만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168로 젖혀간 1선 끝내기는 무슨 뜻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