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이중섭·백남준도 이 화랑이 없었다면…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는 전시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갤러리현대는 올해 개관 40주년을 맞아, 국내 작가 68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에서》전(展)을 서울 강북(본관과 신관)과 강남에서 동시에 펼친다.

이번 전시는 지난 40년간 갤러리현대에서 전시를 열었던 박수근·이중섭·김환기·장욱진·천경자·김기창 등 한국의 대표 작가와 앞으로 인연을 맺을 젊은 작가들의 작품 2~5점씩을 전시한다. 강북 전시장은 구상 작품이 중심이고, 강남 전시장은 추상 작품과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작가들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짚어볼 수 있는 기회다.

갤러리현대의 박명자 사장이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현대의 전신인 현대화랑을 연 것은 1970년 4월이었다. 1961년부터 반도호텔 안에 있던 반도화랑에서 일하면서 화상(畵商)으로서 안목과 경험을 쌓은 뒤 "화랑을 열어 보라"는 화가들의 권유에 힘입어 화랑을 열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상업화랑은 현대화랑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작품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작품 가격도 형성되기 전이었다. 박 사장은 "나이 스물여덟에 화랑을 열었다"면서 "당시로선 벤처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화랑은 1970년에 첫 초대전인 《박수근 소품전》, 1972년에는 《이중섭 작품전》을 열어 당시까지 빛을 보지 못하던 박수근과 이중섭을 널리 알리고 한국미술사에서 제자리를 찾아줬다. 박 사장은 반도화랑 시절부터 박수근 화백 가족과 가까웠고, 박 화백이 타계한 이후에는 남편의 화집을 내고 싶어하는 부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박수근 소품전》을 열었다고 했다. 《이중섭 작품전》은 이중섭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구상 시인과 박고석 화백 등이 박 사장에게 권해서 이뤄졌다. 현대화랑은 박수근과 이중섭에 이어 《천경자 개인전》까지 성공시켰고, 이는 당시 경제 성장기와 맞물리면서 한국 미술의 붐을 일으켰다.

현대화랑은 1970년대 이어 1980년대에도 국내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다. 박 사장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987년 파리에서 김창열 화백의 소개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백남준을 만났다. 이후 1990년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마련하는 등 백남준을 국내에 알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대화랑은 1987년 갤러리현대로 이름을 바꿨고, 1990년대부터는 큐레이터 중심으로 전문적인 전시 기획을 강화했다. 미술평론가인 오광수 문화예술위원장은 "현대화랑은 한국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왔고, 한국 화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명자 사장은 "그동안 작품에 값을 매기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면서 "컬렉터와 작가의 중간에 있지만, 결국 컬렉터보다는 작가 편을 들게 되더라"고 말했다.

갤러리현대는 2006년 박 사장의 차남인 도형태 대표가 전면에 나서면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도 대표는 국내 젊은 작가를 발로 뛰며 발굴하고 해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가상선》처럼 국내 젊은 작가들의 미디어 작품 전시를 대규모로 열어, 과감한 시도를 보여줬다. 도 대표는 "40년의 전통에 걸맞은 사명감을 느낀다"면서 "오는 4월 박수근 45주기 특별전을 열면서 박수근과 이중섭 같은 작가를 해외에 알리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12일부터 2월 10일까지 열린다. 갤러리현대 본관·신관 문의 (02)2287-3500, 강남 문의 (02)519-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