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실족(失足 )

〈제13보〉(169~188)=피아(彼我)의 경계선이 확정된 상태지만 승부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다. 우하귀에 백 대마의 삶이 걸린 패(覇)가 남았기 때문. 마지막 남은 승부처를 서로 외면한 채, 수십 수째 서로 팻감을 저울질하면서 딴청을 부리고 있으니 참 희한한 바둑이다. 집으론 잘 어울렸지만 선수(先手)를 뽑은 백이 약간이나마 유리하다는 게 검토진의 진단.

백은 그 선수를 ?V에 행사한다. 끝내기 겸, 혹시 패싸움을 하다 우상귀가 '가'로 뚫렸을 경우 자체 삶을 모색해 두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하귀 패는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V를 둔 배경이다. 169로 참고도 1로 막았더라도 18에 이르면 흑이 패를 이길 수 없음이 입증된다(8 14…◎, 11 17…5).

169는 성립되지 않는 헛수. 백은 대꾸하지 않고 172로 넘었다. 이 두 수의 교환으로 이제 집으론 백이 크게 앞섰다. 흑은 실족(失足)한 대가로 좌하귀를 팻감 공장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173이 놓였지만 이제 백은 약간의 보상만 받으면 우하귀를 포기하는 '계약서'에 서명할 참이다(벌써 177의 굴복도 받아냈다). 저물녘에 비로소 안개가 걷혀가고 있다. (178 184…◎, 181 187…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