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흑,투항

〈제14보〉(189~218)=좌하귀에서 흑이 한 차례 헛 팻감을 쓰는 사이 백은 도처에서 이득을 봤다. 약간의 양보만 더 얻어낸다면 우하귀 백을 버려도 승리가 보인다. 반대로 흑은 출혈 없이 우하귀를 잡아야 하는 데 그건 불가능함을 안다. 승패가 결정됐음을 깨닫는 순간 대국자들은 더 이상 적(敵)이 아니다. 묵묵히 골인지점을 향해 함께 발을 옮겨놓는 동반자일 뿐이다.

백이 △에 팻감을 쓴 장면. 189를 생략하면 어떻게 될까. 참고도 1로 패를 해소해도 좌상귀 흑은 무사하다. 하지만 18까지 이곳저곳 당해선 패를 이겨도 남는 게 없다. 반면(盤面)으로도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결론. 좌하귀가 흑에게 팻감의 보고(寶庫)라지만 '잔돈푼' 팻감이라면 206까지에서 보듯 백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12 끊음도 고약한 팻감. 215로 한 차례 더 패를 계속해 보던 추쥔, 218에서 비로소 항복 의사를 표시한다. 패를 계속한다면 우하귀는 잡을 수 있겠지만 이미 집으로 이길 수 없음을 확인한 것. 두 대국자를 가른 바둑판에서 아직도 포연(砲煙)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다시 그 위로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흐른다. (193 199 205 211 217…▲, 196 202 208 21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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