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선의 시네마 업데이트] '용서는 없다'

딸 구하려는 부검의와 살인마 대결 …

신선함 부족 - 반전은 볼만

영화에서 반전은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반전에 목숨 걸어 실패한 영화들도 무수히 많다. 반전이란 이른 바 성공하면 몇 배의 횡재, 실패하면 거덜나는 도박과도 같은 것. 최근 '아바타' 폭풍이 몰아치는 극장가에서 들어선 한국영화 '용서는 없다'는 그 반전을 강력하게 성공시킨 영화다. 그런데 더 희한한 건 후반부의 끔찍한 반전을 제외하곤 이 영화의 앞뒤 설계 요소들이 그리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과학수사대의 최고 부검의 강민호 교수(설경구). 그는 13년 만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딸과 함께 살기 위해 일을 정리하던 중 마지막 의뢰를 받는다. 바로 금강에서 발견된 토막 살인사건. 강민호는 여섯 조각나고 팔 한 쪽이 사라진 채 발견된 아름다운 여성의 시체를 부검하게 된다. 얼마 후 금강 보호를 주장하던 환경운동가 이성호(류승범)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는 순순히 범인임을 자백한다. 그 시간, 공항에서 딸을 기다리던 강민호는 이성호가 보냈다는 서류봉투를 받는데, 납치된 딸의 사진이 들어있다. 기막히게도 이성호는 강민호에게 부검 증거를 조작해 3일 안에 자신을 풀려나게 하면 딸을 살려주겠단다. 아버지 강민호는 미친 듯이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법의학자이자 부검의인 강민호는 결국 '추격자'가 된다. 이성호가 시체에 남긴 단서를 찾아서, 자꾸만 "기억을 더듬어보라.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그의 말을 따라서. 그렇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꾸 선배 영화들이 연상된다. 범인임이 분명한 용의자를 기한 안에 무죄로 풀어줘야 하는 설정은 '세븐 데이즈'를, 온갖 단서들을 따라 시골길을 헤매는 강민호의 모습은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를, 오래 전 아버지가 저질렀던 실수로 인해 딸이 희생되는 상황은 '올드보이'를. 그렇다. '용서는 없다'는 너무 익숙한 설정으로 짜인 영화다. 한국영화 스릴러의 계보가 아름답게 이어진 결과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추측해 보건데, 어디서 많이 본 요소들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옮겨야겠다고 결정할 만큼, 강력한 반전을 믿었던 듯하다. 실제로 소름끼치는 반전이긴 하다. 그러나 자극은 강해도 여파는 오래 가지 않는다. 용의자 이성호와 피눈물 범벅이 돼 바닥을 구르는 아버지 강민호를 통해 복수와 용서에 대해 대놓고 설교하는 연출은 배우들의 연기력에 많이 의지한다. 그 안에서 팽팽한 긴장감이나 가공할 속도감 혹은 그 반대의 끓어오르는 어떤 기운을 자아내기 위한 형식적,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신선한 시도를 발견하긴 어렵다. 아무리 봐도 '용서는 없다'는 성공했던 옛 기억들에 너무 기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