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어둠 속 미아(迷兒)

〈제4보〉(46~55)=바둑 격언 가운데 '남의 집이 커 보이면 진다'는 게 있다. 상대방의 '득점'을 과대평가할 경우 무리한 침입을 유발, 패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46의 단기(單騎) 돌입은 응수타진으로 보아주기도 힘든 지나친 만용이었다는 결론. 참고도 1 이하 7까지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백이 외곽 강화로 충분한 대가(代價)를 얻은데다 훗날 A의 선수 끝내기도 남아 흑집이 생각보다 큰 것은 아니라는 것.

침입을 당한 쪽으로서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몇 수를 공들여 쌓은 장성(長城)인데 한 방에 초토화시키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과연 47로 압박해 46 한 점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46과 47을 교환한 채 철수한다면 물론 백의 큰 손해다. 결국 흑은 시커먼 대형그물을 연거푸 던져 넣고, 그 속의 백은 미로(迷路)를 뚫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구도가 됐다. 물론 백의 대모험이다.

48, 50으로 틀을 잡아봤으나 흑은 51로 붙여 백의 명줄을 바짝 조인다. 55까지, 백의 몸체가 갈수록 커져간다. 이제 침입부대를 그냥 버리는 길은 사라졌다. 통째로 살리거나, 포기하더라도 최소한의 보상은 받아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과연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백의 미아(迷兒) 일단은 한 줄기 빛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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