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지원 영화제 평점 큰폭 하락… 구조조정 돌입?

국고 지원을 받는 6개 국제영화제에 대한 평점(2009 기준)이 이전 3년 평균보다 15% 이상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결과는 작년 11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영화제 보조금을 강력하게 정리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부산영화제를 비롯한 올해 국제영화제들에 대한 '구조조정' 수위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조선일보가 13일 단독 입수한 '2009년 국제영화제 평가결과 보고서'는 "평가항목에 의해 환산한 평점이 15% 이상 감소해 매우 저조하며 지원 규모와 지원 여부를 매년 탄력적으로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제영화제의 경쟁력 지표인 '영화산업에의 기여', '해외의 자발적 참여', '사업운영의 효율성'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지속적인 사업비 증액에도 불구하고 자체 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문화부가 산하 연구원에 의뢰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완성본은 아니지만, 장관 보고를 거쳐 2월 중 발표될 내용의 초안이다. 5명의 평가위원이 ▲사업 계획 ▲추진 과정 ▲사업 성과 ▲문제점 및 개선방안 ▲총평 등 5개 분야로 나눠 의견을 제시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평가위원과 영화제별 평점은 공개하지 않고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합친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작년 국고 지원을 받은 국제영화제는 부산·부천·전주·여성·청소년·제천영화제 등 모두 6개이며, 총 지원 규모는 41억원이다.

작년 정부보조금 18억원을 받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외형에 집착하지 말고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평가위원들은 "규모의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 "관객 증가를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외 게스트에게 무한 봉사하는 영화제는 찾기 어렵다", "프로그래머 10명이 해외출장 53회를 통해 출품을 권유해 작품을 가져 온다면 그걸 '출품작'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불필요한 서울사무소 등 예산이 집중 낭비되는 사안에 대해 정밀한 감사가 필요하다"는 매서운 비판도 있었다. 한편 필름마켓의 성장, 3D 콘퍼런스 개최, 아프리카 영화 발굴 등은 작년 부산의 성과로 꼽혔다.

작년 제10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국고 10억원 지원)는 한국 대안영화 발굴과 높은 예매율 등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숙박을 비롯한 편의시설의 절대적 부족이 여전히 문제였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할 일이 거의 없는 황량함", "모텔을 잡았는데 낮 시간에 짐을 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상영관과 관객의 성장을 유도하는 체계적인 노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애틀 영화제와 만하임 영화제의 우수 프로그램과 경영방식을 응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4억원의 국고 지원을 받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특정 장르영화제라는 정체성이 크게 흐려지고 영화 상영 외의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 관객 유치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평가위원들은 "'장르영화'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호러·SF·에로·가족영화까지 인기 있는 영화를 모두 다루겠다는 것은 철학도 정체성도 전문성도 없음을 자인하는 것", "입장료 외에는 특별한 수입원이 없다는 한계", "시골 장터 같은 개막식과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사회자와 통역" 같은 지적도 있었다. 2008년 출범한 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NAFF)가 거둔 성과는 의미 있는 수확으로 언급됐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국고 4억원 지원)는 추진 능력은 모든 국제영화제의 선두에 있으나 조직이 너무 경직돼 있다는 지적과, 신촌이란 지역 특성을 충분히 활용치 못한다는 평가가 있었다. "남성 관객에게 극도의 소외감을 부추긴다", "세계 여성영화제의 중심이 되겠다는 허황된 목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관객과 영화인 간 만남 기회도 부족하다는 평가였다.

2억5000만원을 지원받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음악과 영화 전문가들로 구성된 탄탄한 조직력이 장점으로 꼽혔다. 예매율이 높고 재정상태도 건전해,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제천 시내와 청풍 호반 사이 고질적인 교통문제와 국제영화제이면서도 지역 축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국고 2억5000만원 지원)는 해외 게스트 참여가 적고, 관리도 부실해 국제영화제의 격조를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영화 상영 외의 부대행사를 치를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작년 11회째를 맞았으나 일반인의 인지도가 매우 낮고, 관객층도 다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청소년에 대한 영상교육 목표가 강하므로 잠재력과 가능성은 크다는 평가도 나왔다. 보고서는 총평에서 "당초 국고 지원은 각 영화제가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키로 했다"며 "영화제가 영화산업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무조건적인 국고 지원은 개선해야 한다"고 요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