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용서는 없다
입력 : 2010.01.18 13:44
| 뻔한 반찬으로 맛깔스럽게 만든 별미 |
살인자가 말한다.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그 고통은 물론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희열을 느낀다. 복수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고통도 아니다. 그녀는 이미 죽었다. 죽는 날까지 괴로워해야 하는 자는, 살아남은 자다. 피해자의 가족이다. 아이러니다. 가해자는 웃고, 피해자는 운다. 옛날에도 그랬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 않다. 살아남은 자는, 가해자가 강요한 고통을 거부한다. 그 방법은 하나다.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왜 용서를 거부한 것일까? 그 대상은 누구일까? 이 질문과 대답이 '용서는 없다'(감독 김형준)의 핵심이다. 제목의 의미는 뜻밖이다. 용서의 주체와 대상이 상식과 다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게 아니다.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다.
'용서는 없다'는 반전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각 인물과 사건은, 액체가 깔대기를 타고 흘러내려 하나의 점이 되는 것처럼, 마지막 반전과 대사를 향해 흘러간다. 범죄, 스릴러의 장르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용서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렵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다"와 같은 대사를 받쳐주는 맥락이 자연스럽다.
강민호 박사(설경구)는 과학수사대 최고의 부검의다. 마지막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금강 하구에서 발견된 토막살해 사건이다. 시신은 팔, 다리, 목이 여섯 조각으로 절단돼 있다. 이성호(류승범)는 명망있는 지역 환경운동가다. 사건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살인용의자로 체포된 이성호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한다. 그는 환경 운동을 위해 술집여자를 살해한 게 아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범인은 영화 초반에 체포된다. 따라서 짐작할 수 있다.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왜 죽인 것인지, 진짜 이유가 궁금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가 던져진다. 이성호가 강민호의 딸을 납치한다. 그 사실을 강민호에게 알려준다. 자신을 경찰서에서 빼내주면, 살인 혐의를 벗겨주면, 딸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부검의와 살인 용의자의 빅딜이다.
'용서는 없다'는 강민호와 이성호의 치밀한 두뇌게임이다. 강민호는 납치된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성호는 오히려 여유만만이다. 그는 깊은 상처를 발톱처럼 감춘 맹수다.
영화에는 익숙한 요소가 많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다니고('세븐데이즈'), 용의자와 형사는 쫓고 쫓기고('추격자'), 새내기 열혈 여형사 민서영(한혜진)을 제외한 지방도시 형사들은 무능하다('살인의 추억'). 새롭지 않다는 건 분명히 가리기 힘든 단점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치밀함은 나무랄 데 없다. 세 편의 영화를 다 봤다고 해도, 뻔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영화에서 '왜'는 여러 겹이다. 살인 동기가 아니라, 숨은 비밀과 반전으로 승부한다. 단서를 보여주고 감추는 속도 조절도 뛰어나다. 특히 금강 줄기와 비너스를 겹쳐놓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여기에 주연,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가 밀도를 높인다. 류승범은 능글맞고 용의주도한 살인자 역을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설경구는 이름값을 충분히 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공공의 적', '그놈 목소리'에서 보여준 예전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다소 모호하고 허전하다. 회심의 카운터펀치가 빗나간 탓이다. 강민호는 마지막에 자신을 처벌한다. 이유는 많다. 그 옛날, 그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한 여학생의 죽음과 관련돼 결정적인 증언을 해야 했을 때, 돈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는 훗날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한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성호도 가족 때문에 죄를 저지른다. 그 공통점이 서늘하다. 강민호의 잘못은 또 있다. 이성호의 살인 증거를 조작한다. 그러나 그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법적인 잘못 때문이 아니다.
강민호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그' 행위는,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딸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그의 절규는 절박하고 아프다. 하지만 맥락이 선명하지 않다. 감정이입까지 끌어내지 못한다. 그랬더라면 '용서는 없다'는 그리스 비극처럼 운명에 대한 거대한 서사시가 됐을 것이다.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 않다. 살아남은 자는, 가해자가 강요한 고통을 거부한다. 그 방법은 하나다.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왜 용서를 거부한 것일까? 그 대상은 누구일까? 이 질문과 대답이 '용서는 없다'(감독 김형준)의 핵심이다. 제목의 의미는 뜻밖이다. 용서의 주체와 대상이 상식과 다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게 아니다.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다.
'용서는 없다'는 반전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각 인물과 사건은, 액체가 깔대기를 타고 흘러내려 하나의 점이 되는 것처럼, 마지막 반전과 대사를 향해 흘러간다. 범죄, 스릴러의 장르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용서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렵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다"와 같은 대사를 받쳐주는 맥락이 자연스럽다.
강민호 박사(설경구)는 과학수사대 최고의 부검의다. 마지막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금강 하구에서 발견된 토막살해 사건이다. 시신은 팔, 다리, 목이 여섯 조각으로 절단돼 있다. 이성호(류승범)는 명망있는 지역 환경운동가다. 사건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살인용의자로 체포된 이성호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한다. 그는 환경 운동을 위해 술집여자를 살해한 게 아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범인은 영화 초반에 체포된다. 따라서 짐작할 수 있다. 비장의 무기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왜 죽인 것인지, 진짜 이유가 궁금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가 던져진다. 이성호가 강민호의 딸을 납치한다. 그 사실을 강민호에게 알려준다. 자신을 경찰서에서 빼내주면, 살인 혐의를 벗겨주면, 딸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부검의와 살인 용의자의 빅딜이다.
'용서는 없다'는 강민호와 이성호의 치밀한 두뇌게임이다. 강민호는 납치된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성호는 오히려 여유만만이다. 그는 깊은 상처를 발톱처럼 감춘 맹수다.
영화에는 익숙한 요소가 많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다니고('세븐데이즈'), 용의자와 형사는 쫓고 쫓기고('추격자'), 새내기 열혈 여형사 민서영(한혜진)을 제외한 지방도시 형사들은 무능하다('살인의 추억'). 새롭지 않다는 건 분명히 가리기 힘든 단점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치밀함은 나무랄 데 없다. 세 편의 영화를 다 봤다고 해도, 뻔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다.
영화에서 '왜'는 여러 겹이다. 살인 동기가 아니라, 숨은 비밀과 반전으로 승부한다. 단서를 보여주고 감추는 속도 조절도 뛰어나다. 특히 금강 줄기와 비너스를 겹쳐놓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여기에 주연,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가 밀도를 높인다. 류승범은 능글맞고 용의주도한 살인자 역을 무리없이 소화해 낸다. 설경구는 이름값을 충분히 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공공의 적', '그놈 목소리'에서 보여준 예전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다소 모호하고 허전하다. 회심의 카운터펀치가 빗나간 탓이다. 강민호는 마지막에 자신을 처벌한다. 이유는 많다. 그 옛날, 그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한 여학생의 죽음과 관련돼 결정적인 증언을 해야 했을 때, 돈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는 훗날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한다.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성호도 가족 때문에 죄를 저지른다. 그 공통점이 서늘하다. 강민호의 잘못은 또 있다. 이성호의 살인 증거를 조작한다. 그러나 그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법적인 잘못 때문이 아니다.
강민호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그' 행위는,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딸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그의 절규는 절박하고 아프다. 하지만 맥락이 선명하지 않다. 감정이입까지 끌어내지 못한다. 그랬더라면 '용서는 없다'는 그리스 비극처럼 운명에 대한 거대한 서사시가 됐을 것이다.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