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쇳덩이도 구겨진듯 녹아내린듯… '미술관의 수수께끼'

뉴욕의 미술관 중 실험적인 전시를 보여주는 곳으로 알려진 뉴뮤지엄(New Museum)이 스위스 태생의 작가 어스 피셔(Urs Fischer)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뉴뮤지엄은 "어스 피셔가 미국에서 갖는 대규모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면서 "한 작가에게 3개 층의 전시장을 할애한 것은 처음이다"라고 밝혔다. 어스 피셔는 1973년 취리히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전시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작가로 꼽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내리는 왁스를 비롯해 썩는 야채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번 뉴뮤지엄의 전시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큐레이터로 2010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지명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기획했다.

전시는 4층부터 시작되는데 전시장에 들어서면 엄청난 규모의 조각에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순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기괴한 동굴에 들어선 것 같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추상 조각들이 매달려 있거나 위태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거대 조각은 작가가 진흙으로 모형을 만든 뒤 약 50배 정도로 확대한 것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 같기도 하고 뒤틀어진 고치 같기도 하다.

3층에는 무엇엔가 짓눌려 구겨진 듯한 피아노가 놓여 있다. 핑크 가로등 역시 녹아내린 듯 주저앉아 있다. 작가는 미술관의 무게에 의해 짓눌려진 피아노와 가로등을 보여줌으로써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하고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했다.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피셔의 작품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축 늘어진 시계를 떠올리게 된다. 전시장의 구멍 뚫린 벽에 다가가면 구멍 속에서 갑자기 사람 혀가 불쑥 튀어나온다. 작가의 짓궂은 익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3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피아노와 가로등 외에는 별다른 작품이 보이지 않아 휑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시장 전체가 사진으로 도배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피셔는 바로크 시대 건축에서 사용되던 '눈속임'을 끌어낸 것으로, 바로크 시대에는 창 등을 벽에다 그려 창이 있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노렸다. 피셔는 환영에 의한 착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진에 담아 그대로 벽에 붙여 '눈속임'을 유도했다.

2층 전시장은 피셔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섹션이다. 피셔는 51개의 오브제를 골라 각각의 오브제를 3개면에서 촬영했다. 사진을 크게 확대해 스틸로 만든 상자에 붙였다. 낡은 운동화나 케이크 등 51개를 골라 이를 확대해 스틸 상자에 붙인 것이다. 오브제가 놓여 있는 방에 들어서면 거인국에 들어선 것 같다. 확대된 일상품들을 들여다보면서 실재와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걸 느낀다. 암석 크기만한 책을 보면서 이미 알고 있었던 책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규모와 형태의 변형을 통해 기존에 당연하게 가지고 있던 개념을 부풀리거나 뒤바꿔 놓는다. 예술과 환상의 세계를 뒤섞어 흥미로운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전시는 2월 7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