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멕 라이언 닮은 그녀, 그리고 연애의 법칙

이 대단히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는 이런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허구이므로 등장인물과 닮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직 우연일 뿐입니다. 특히 너… 제니 벡맨. 망할 ×." 이렇게 시작한 영화 '500일의 썸머(21일 개봉)'는 끝까지 아기자기하고 촘촘하게 한 커플의 연애사를 풀어놓는다.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사랑부터 마님과 돌쇠의 정분(情分)까지, 모든 연애는 사실 어슷비슷하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건 특이한 사랑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연애에서 얘깃거리를 정확히 집어냈기 때문이다.

톰(조셉 고든 레빗)은 신참 직원 썸머(주이 디샤넬)에게 첫눈에 반한다. 만난 지 3일째, 톰은 썸머와 처음으로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28일째엔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말한다. 34일째엔 그녀로부터 기습 키스를 받는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톰과 달리 썸머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영화 첫 장면은 톰과 썸머가 만난 지 488일째 공원에서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바로 1일째로 돌아간다. 영화는 계속 두 사람의 500일을 앞뒤로 오가며 연애의 법칙을 보여준다. 만난 지 34일째 두 사람은 쇼핑몰에서 부엌놀이 침대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논다. 282일째 같은 쇼핑몰에 갔을 땐 소 닭 보듯 한다. 처녀 총각들은 대오각성(大悟覺醒)할진저, 282일째 매일같이 깔깔낄낄 하는 연애란 적어도 지구에는 없다.

10대 때 뉴저지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갖고 놀던 남자애와 미시간에서 종이학 접기를 하던 여자애가 나중에 LA 직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첫눈에 반한 모든 남녀의 불타는 눈동자는 최고급 휘발유를 들이붓는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알게 된 지 22일째,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여자에게 "주말 잘 보냈어요?" 하고 묻는다. 그녀는 "아―주 좋았어요(It was gooood)"라고 답한다. 남자는 머리를 싸맨다. 어떤 놈과 뒹굴었기에 아―주 좋았다는 것일까. 그런 것이다. 연애는 상대의 일상을 오해하는 것이며 괴팍함을 양해하는 것이다. 상대를 장미꽃잎으로 곱게 싸서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은 것인 동시에, 발가벗긴 채 불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하는 것이다.

그녀의 키스를 받은 다음 날 남자의 출근길 장면이 인상적이다. 거리의 분수가 그를 기다렸다가 물을 뿜고 행인들의 표정은 모두 그의 성취를 축하하는 메시지다. 그때 남자가 양희은의 가사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의 뜻을 알 턱이 없다.

주이 디샤넬은 이 영화의 필요조건이다. 전성기 멕 라이언을 연상케 하는 그녀는 앞으로도 비슷한 영화에 자주 등장할 것 같다. 조셉 고든 레빗 역시 귀엽고 매력적이다(특히 그가 정장에 푸마 스니커즈를 신고 나온 장면). 놀라운 건 스콧 뉴스타터와 마이클 웨버라는 두 남자가 각본을 썼다는 사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마크 웹 감독은 록밴드 뮤직 비디오를 주로 찍었던 사람이다. 영화 속 남녀가 친해지는 계기가 된 영국밴드 스미스(The Smith)를 비롯해, 음악들도 무척 좋다.

작년 7월 미국서 개봉한 뒤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첫 자막에 나오는 '제니 벡맨(Jenny Beckman)'의 실체다. 제작진은 결국 "제니는 작가인 스콧의 옛 여자친구이고 미니홈피(facebook)도 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의문은 계속된다. 인터넷엔 "그 모든 게 다 마케팅 수작"이란 주장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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