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웨딩드레스'

같은 재료-요리법…너무 익숙해

　'웨딩드레스'(감독 권형진)는 관객의 눈물을 겨냥한다. 그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흐르고, 가슴을 적시고, 영혼을 울리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애잔하게 남아 있을까? 아쉽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웨딩드레스'는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걷는 여행자 같다. 길을 잃을 우려가 없다. 맹수의 공격을 받을 위험도 없다. 대신 낯선 경치를 보는 기쁨을 포기해야 한다. 익숙함은 대개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는데 약효를 발휘한다. 하지만 지루함만 안겨줄 수도 있다. '웨딩드레스'는 후자에 가깝다.

'웨딩드레스'는 인물 설정부터 익숙하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인 엄마 서고운(송윤아)과 초등학생 외동딸 장소라(김향기)가 주인공. 남편(아빠)은 사망했고, 엄마는 바빠서 애를 거의 돌보지 못한다. 엄마는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어느 순간부터 딸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이유가 있다. 엄마와 딸은 이별이 예고돼 있다. 엄마에게 원인이 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일기예보 역할을 한다. 소풍과 김밥, 자전거 배우기, 게임기 선물 같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많은 영화에서 비슷한 작전을 썼다. 다소 과장스럽게 애정을 표시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웨딩드레스'는 좋게 말해서 정공법으로 접근한다. 엄마는 자주 구토하고, 조숙한 딸은 엄마의 병을 눈치챈다. 이후 스토리는 예상 가능하고, 플롯마저 익숙하다. 문제는 결말이 뻔하다는 게 아니다. 길의 끝에 이르는 서사 전개 과정이다. 고운의 모성애는 피상적이고 상투적이다. 시나리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사례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 그래서 감정의 구체성이 허약해지고, 인물들의 내면을 전달하는데 한계를 노출한다.

어떤 인물은 갑자기, 180도 변한다. 소라를 돌봐주겠다면서, 사업 망했다면서 보험금 얘기를 넌지시 꺼냈던 고운의 언니가 병실에서 돌연 사과하며 눈물짓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뺨 한 대 맞고 회개하는 악역은, 이미 악역으로서는 자격미달이다.

익숙한 설정, 상투적인 캐릭터와 사건들, 감정이입이 안되는 인물들.... '웨딩드레스'는 똑같은 재료를 똑같은 요리법으로 만들어 내놓은 밥상과 같다. 새로운 요리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중 특이한 인물을 꼽아보자면 소라다. '웨딩드레스'의 승부구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 소라는 똘똘하고 야무지고 당차다. 어른보다 더 침착하고 사려 깊다.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서다. 정서적 교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엄마에게 "피곤하니까 푹 자"라고 말하는 대사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어린애 혼자서, 스스로, 슬픔을 정화하고 아픔을 치유한다. 관객들의 감정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별로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소라의 환경도 몰입을 방해한다.

'웨딩드레스'는 사건을 단선적으로 따라간다. 그 대신 소라의 내면과 감정 흐름을 집중 조명했다면, 일하는 엄마를 둔 도시 중산층 어린이의 성장영화로 특화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보기 드문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송윤아의 연기변신이나 아역배우 김향기의 열연을 보는 재미가 더했을 것이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