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쓰러진 투우(鬪牛)

〈제13보〉(161~193)=바둑은 마주 앉아 오직 두뇌 회전만으로 우열을 가리는 승부란 점에서 육체를 동원하는 스포츠와 구별된다. 같은 승부이면서도 바둑이 스포츠보다 더욱 감정의 지배를 받는 이유다. 초반 좌변의 깊은 침투가 원인이 돼 백은 줄곧 고전의 늪을 헤매왔다. 중반 이후 상대가 갈수록 얄밉게 처리하면서 감정도 상할 만큼 상한 상태. 최철한은 그 울분을 못 삭인 채 적진으로 돌진, 성난 투우처럼 장렬히 쓰러진다.

이제 와선 기세 좋던 쿵제도 행여 다 된 죽에 코 빠뜨릴라, 절에 온 색시처럼 손길이 조심스럽다. 이른바 일발 KO 펀치만 허용하지 않으면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다. 182로 '가'에 막아 중앙 흑 3점과 수상전을 노릴 수는 없었을까. 그것이 참고도인데, 하지만 최선의 수순을 거쳐도 16에 이르러 백이 한 수 부족으로 잡힌다.

그래서 182로 한 차례 더 최후의 안간힘을 담아 힘껏 팔을 뻗어 본다. 혹시 상대 명치에 맞아준다면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92까지 일견 묘수풀이(?) 형태까지는 만들었지만 193의 빈삼각이 놓이자 더 버틸 수 없어진 것. 약 오르는 피날레였다.

 

최철한 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