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아바타'와 '더 로드'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꾼다. 유토피아의 사전적 의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좋은 곳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지만 누구나 꿈꾸는 좋은 곳'이다. 현실 도피적이 아니다. 꿈에 방점에 찍혀 있다. 현실이 '좋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영화 '아바타'(감독 제임스 카메론)와 '더 로드'(감독 존 힐코트)는 상징적이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세계, 유토피아와 암울한 현실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흥행 성적은 천양지차다. '아바타'는 외국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괴물'(1302만명)을 제치고 국내 개봉영화 흥행 1위까지 노릴 태세다. '더 로드'는 일부 극장과 예술영화관에서만 상영됐다. 그러나 영화의 의미와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바타'는 꿈같은 세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지구에서 4.4광년이나 떨어진 판도라 행성이 배경이다. 그곳의 거주자는 지구인이 아니라 나비족. 판도라에서 나비족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산다. 자연 친화적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복숭아꽃 피는 아름다운 곳ㆍ속세를 떠난 이상향)과 유사한 고장이다. 판도라 행성의 풀과 나무들은 뿌리로 연결돼 소통한다. 짐승들은 나비족을 도와 정복자인 지구인을 물리친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뤄 사는 신화의 세계다. 그런데 '아바타'가 뜻밖의 후유증을 낳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객들 중 일부가 우울증을 호소하고, 심지어 자살충동까지 느낀다는 것이다. 환상적인 유토피아, 이상향으로서의 판도라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판도라에 태어나고 싶어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다. 극단적인 반응이기는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판도라 행성은 꿈의 세계다. 영화를 보면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지구인의 패배를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지구인이면서도 외계인 나비족에게 정서적 공감을 느낀다. 아름다운 판도라가 인간의 욕망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관객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유토피아의 꿈을 일깨운다.

'더 로드'의 세계는 판도라 행성과 정반대다. 코맥 매카시의 퓰리처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더 로드'의 세계는 잿빛 폐허의 세계다. 그곳은 원인 불명의 재앙으로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지구의 멸망 혹은 멸망한 지구의 모습이다. 모든 건물은 무너졌고, 나무들은 불탔고, 태양이 뜨지 않아 언제나 춥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인육까지 먹는다. 영화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부자(父子)의 고단한 여정을 리얼하게 그린다.

'더 로드'의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어둠의 세계인 디스토피아다. 그러나 절망의 세계는 아니다. 부자는 따뜻한 남쪽, 생명의 시원인 바다를 찾아 끝없이 걷는다. 아버지는 바닷가에서 죽고, 아들은 줄곧 뒤따라온 다른 가족을 만난다. 아들은 그 어른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 인육을 먹지 않는 그는, 개를 데리고 먼 길을 걸었다. 좋은 사람이다. 그토록 처참한 세월을 견디면서도 인간의 이성을, 꿈을 잃지 않았다. 아들은 그들과 합류한다. 아버지가 말한 '불씨'는 아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

카메론 감독은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을 보라"고 말한다. '아바타'에서는 나비족 전사가 되어 탐욕에 물든 지구인과 싸우는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가 그런 사람이다. '더 로드'에서 말한 '좋은 사람'일 것이다. '더 로드'에서는 살아남은 아들과 다른 가족이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된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세계만이 신화의 세계는 아님을 보여준다.

현실을 '더 로드'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을 보고 우울증을 느낄 것이다. 그럼 우리는 '더 로드'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아바타'의 판도라를 지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장르도, 흥행 성적도 다르지만 '아바타'와 '더 로드'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오랜 꿈을, 유토피아(이상향)를 향한 열정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단지 재미로만 볼 수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