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降伏

〈제7보〉(153~166)=바둑은 공간(空間) 경쟁이다. 누가 더 효율적인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하지만 현대바둑엔 제한시간이란 장치가 있다. 효율적 시간사용 또한 승부의 요건이라는 뜻. 이 판에서 퍄오는 100수째부터 초읽기에 몰린 뒤 끝까지 처절히 버텨 승리했다. 반면 구리는 무수한 승부처에서 '노 타임'으로 일관, 시간을 1시간이나 남기고도 졌다. 이것도 '태업(怠業)'이나 '직무 유기' 아닐까.

153으로 '가'면 참고도의 바꿔치기가 필연인데 이것은 백승 확정이란 결론. 162로 '가'에 차단하지 않은 이유는? 그 순간 흑 '나'를 당해 백이 한 수 부족으로 잡히기 때문이다(계속해서 백 162엔 흑 '다'). 줄기차게 '마지막 1분'에 쫓기면서도 162는 또 한 번 침착무비한 대응이었다.

공배가 안 찼으므로 흑도 163으로 자신부터 포위망을 벗어나야 할 입장. 하지만 여기서 백은 눈길도 주지 않고 164, 166에 두어 좌상 백을 살았고, 그 순간 흑은 허탈한 표정으로 돌을 거두었다. 흑 '라'로 귀 쪽을 선수로 살린 뒤 '마'에 늘어 중앙을 잡으면 아직 해볼 만한 형세 아닐까. 이 마지막 의문은 내일 총보에서 풀어본다.

 

 

퍄오원야오 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