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ㅣ강원도의 산] 두타산(1,353m) - 삼척시 미로면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흐르는 어간, 강원도 정선, 동해, 삼척땅에 이르는 곳에 여암 신경준(1712~1781)의 <산경표>에 보면 두타산 다음에 청옥산 순서로 나와 있는데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산의 위치가 뒤바뀌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산악인들이 싸잡아 청옥두타, 두타청옥이라 부르고 있는 이곳에는 무릉계곡, 중봉골, 죽방골, 구룡골, 번천골과 같은 비경지대가 즐비하다.

특히 ‘아시내’라 하는 번천계곡은 산악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산행코스로 장엄한 암반, 길고 넓은 폭의 원시림을 소유한 계곡이다. 금대봉에서 발원하는 검용수만 아니었으면 이곳이 남한강의 발원지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적설량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한데 1998년부터는 더더욱 적설량이 많아져 악명을 떨치는 계곡이기도 하다.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 번천계곡은 청옥산(1403.7m)과 두타산(1352.7m) 사타구니에 솟은 문바위에서 남으로 시작된다. 하늘 아래 첫동네의 이름인 고내(高川)에서부터 엄청난 황금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금내(金川), 둘레 40여m의 시커먼 소가 있는 거무내(黑川), 달촌(橋川), ‘개천 안쪽에 있는 마을 또는 벌판 안쪽에 있다’는 뜻의 아시내인 번천(番川)이 있다. 문바위골, 장구목이골, 전나무골, 갈밭골, 산죽골, 마피아골 등을 합하여 통칭 번천계곡이라 부른다.

산행 후 교통편을 생각하여 들·날머리를 조릿대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하여 그런 이름을 얻은 댓재(竹嶺)로 잡고 산행을 시작했다. 조선시대 미수 허목 선생이 삼척부사로 있으면서 길을 닦았다는 옛길 옆에는 돌담만 남은 옛 성황당이 숲속에 숨어 있고, 지금은 424번 지방도로 옆 북쪽에 근래에 신축한 산신각이 있다.

벽은 돌, 지붕은 너와였던 성황당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에 백운복이란 사람이 경영하던 하장 양조장이 업구렁이 사건으로 망할 때, 박봉석이란 사람이 서기로 일할 때, 항상 댓재를 지날 때에는 국시성황님께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어느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더니 “나는 댓재의 국시성황이니 빨리 댓재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라”고 하여 새벽밥을 일찍 지어 먹고 점심을 싸가지고 댓재에 올라가 여기저기 살펴보았으나 좋은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벌써 한나절이 되어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성황당 앞에 풀어 우선 고시레를 한 다음 밥을 먹기 전에 소변을 보러 뒤편으로 갔는데 큼직한 종이 뭉치가 있어 풀어보니 거액의 지폐다발이었다.

얼마동안 돈 잃은 임자를 찾아 보았으나 나타나지 않아, 그 돈으로 망해가는 양조장을 인수받고 매년 3월 삼짇날에 성황당에 제사를 올리고 그가 죽은 후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 지은 산신각에도 하장 산악인들이 모여 매년 성황고사를 지내고 있다.  

태백여성산악회원들이 댓재에서 간단한 운동으로 몸을 푼 후 산신각이 있는 대간길로 올라가지 않고 산신각 서쪽 화장실이 있는 잔디공원으로 들어 명주목이 가는 계곡길로 산행을 시작했다. 간밤에 내린 눈이 발목을 덮는다. 하늘로 치솟은 일본이깔나무에 떡칠해져 있는 설경에 모두 입을 벌린 채 상기된 얼굴들이다.

완만한 오름길로 30분 쯤에 멋쟁이 소나무들이 즐비한 햇댓등(횃대등) 서쪽 안부 명주목이다. 명주목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틀어 여기서부터는 백두대간길을 간다. 934봉의 허리를 에돌아 나가니 자침이 북쪽 방향을 지시한다. 세상의 정분 다 떨쳐버린 신갈나무, 굴참나무, 가끔씩 출연하여 분위기 살리는 늙은 소나무, 누덕옷을 걸친 박달나무들에 덕지덕지 핀 눈꽃의 황홀경에 몸도 마음도 새털처럼 가볍다.

이끼가 아죽아죽 바위와 노송이 조화를 이룬 1228봉을 지나 1021봉 바위 끝에 선다. 뒤척이는 운해 사이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청옥산과 골 깊은 번천계곡, 백설이 성성한 두타의 정수리와 염불암, 공평한 세상을 위한 독경 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슴아슴 신기루 같다. 속세의 번잡한 찌든 때를 털어버리고 미끈거리는 바위턱을 내려서 통골목이에 이른다.

하장청타산악회에서 세운 표석이 눈 속에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두타산, 햇댓등→, 통골하산길↓’ 이정표의 얼굴에 다닥다닥 눈이 붙었다. 왼편으로 통골(산죽골) 입구 쪽에는 ‘우천시 통골로 하산하면 위험하다’며 은근히 겁주어 못 가게 하는 경고판이 섰다. 통골목이를 뒤로 하자 이내 톱아오르는 고샅길. 한 발 옮길라치면 두어 걸음 미끄럼을 탄다. 옷도 몇 겹 입어 몸도 둔한데 적설량도 만만치 않은 30cm쯤 된다.

몰아쉬는 숨이 하늘에 닿는 된비알에서 보폭을 짧게 끊어 30분쯤 올라치자 1243봉 턱아래 삼림욕장 쉼터다. 잠시 퍼질러 앉아 한숨을 돌리는 오른편으로 1243봉의 옆구리를 끼고 돌아나가는 사면에는 거무튀튀한 신갈고목이 들어차 있다.

다시 주릉에 올라서서 심한 바람 때문에 키가 크지 못하고 비틀린 신갈나무 군락을 지나자 시야가 트이는 둠산에 진달래밭이다. 나뭇가지에 내린 눈은 설화가 되었다가 다시 햇볕에 녹아 영롱한 에메랄드의 빙하로 변모해 있었다.

눈이불을 덮고 있는 묘와 북으로 돌아앉은 정상석이 있는 두타산 정상이다. 날씨가 흐려 멀리까지 조망을 즐길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넓은 터 눈밭에서 삼실과와 제물을 차려놓고 제를 올린 태백여성산악회는 정상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서쪽 청옥산 가는 대간길로 내려섰다. 촐랑거리는 조붓한 길섶은 잘 벼른 칼과 같은 아름다움의 은빛터널이다. 빙화끼리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는 천상의 음악이 이러할까나 싶을 정도다. 부러질 듯 나무에 매달린 눈을 건드리면 눈벼락은 뒷사람 것이 되는 장난도 걸어본다.

급경사에서 엉덩이 썰매도 타보고 거의 구르다시피 하여 이정표가 있는 박달령에 도착했다. 계속 서쪽 대간 능선으로 길을 이은  10분 후에 왼편 산사면을 돌아 바윗길로 가더니 거대한 바위절벽 아래 ‘←청옥산, ↓번천골, 두타산→’ 자그마한 이정표가 있는 문바위삼거리다. 지금까지는 줄곧 러셀이 되어 있는 대간길을 걷느라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산행했으나 힘든 러셀이 기다리고 있는 번천골로 내려선다.

산행길잡이
댓재~(1시간 30분)~통골목이~(1시간 30분)~정상~(1시간 10분)~문바위~(1시간 30분)~통골입구~(1시간)~댓재

산행 중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나 겨울철에는 사전에 꼭 번천계곡의 적설량과 러셀이 돼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산행에 임해야 한다. 이 계곡에서 눈에 갇혀 5일 만에 탈출한 이들도 있었다.

잡목들 사이로 겨우 한 사람이 다닐 만큼 길이 뚫려 있었으나 눈이 쌓여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바위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소경 돌팔매질 하듯 우묵한 지형만 따라 내려가 본다. 무릎걸음으로 설해목을 말타기하듯 넘어서기도 하고 허방에 발이 빠지면 허리까지 눈이 쌓인 곳도 있다. 옛 산행했던 기억을 더듬어 계곡을 따라간다. 계곡의 합수점에 모덤터와 샘이 있었으나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고라니, 멧토끼, 멧돼지들의 발자욱이 앞장을 서기도 했다.

계곡이 점점 넓어지더니 끝도 없는 광야의 설원을 걷는 기분이다. 헤실바실 엷어져 가는 산그늘 어슬막에 뒤처진 사람의 윤곽이 희미하다. 11명이 교대로 러셀을 담당한다. 더 이상 못 가겠다며 눈 위에 퍼질러 지르퉁한 눈을 돌리며 중중거려 트집을 잡기도 한다. ‘고내’를 지나자 아름드리 전나무와 하장청타산악회에서 세운 표석이 있는 통골목이 등산로 입구다.

길이 많이 넓어졌다. 거의 평지를 걸으나 30cm의 눈이 호락호락 걸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이깔나무들이 참빗살처럼 곧게 자란 숲도 지나고 꽁꽁 얼어붙은 계류를 건너기도 한다. 사위가 저뭇해지며 운무까지 내려앉아 배고픔과 외로움까지 밀려온다.
마피아골 입구에서는 지름길도 있다. 눈길에서는 그냥 임도를 따르는 것도 수월하지만 앞선 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 체력손실을 더는 것도 중요하다. 마피아골 삼거리에 이르니 바리케이트와 건물이 있다. 모퉁이를 휑하니 돌아들자 저 멀리 424번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반갑다.

교통
대중교통편으로 댓재에 가려면 임계, 하장, 삼척, 태백을 기점으로 한다. 삼척에서 하장행 버스는 1일 3회 운행(07:30, 13:30, 16:30)하며 댓재에서 하차한다.
하장에서 삼척행 버스는 1일 3회 운행(09:00, 15:00, 18:00)하며 댓재에서 하차한다. 태백에서 댓재까지 택시요금은 3만8,000원~4만 원. 삼척버스터미널(033-572-2085), 하장버스(033-552-0553), 태백버스터미널(033-552-3100).

숙식 (지역번호 033)
댓재에 있는 댓재휴계소(554-1123)에서 민박과 식사가 가능하다. 또한 12인승 승합차가 있어 약간의 요금을 받고 교통편도 제공해 준다. 하장에 현대식당민박(552-004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