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 재테크팀장의 '알뜰 리포트'] 보험사 경품 미끼에 개인정보 줄줄 샌다

자영업자 장진희(37)씨는 지난달부터 휴대전화에 이상한 번호가 자꾸 찍히기 시작했다. 보험사와 대부업체 등에서 자기 회사 상품을 소개하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들이다.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던 지난 3일 오후에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얼마 전 경품 행사에 응모하셨죠? 당첨되시면 곧 연락이 갈 거예요. 그때 경품 후원을 한 곳이 ○○생명인데요. 이번에 한정 판매하는 보험 상품이 있답니다. 간단한 본인 확인 절차만 거치면 됩니다. 지금부터 고객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모두 녹음됩니다."

장씨는 깜짝 놀라 "내 이름과 전화번호, 집주소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졌다. 상담원은 "경품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신상정보를 다른 회사에 줘도 된다고 동의하지 않으셨느냐"고 대꾸했다. 그제야 장씨는 희미해진 기억을 떠올렸다. 연말에 A쇼핑몰에 접속했다가 5000원짜리 할인쿠폰을 받으려고 경품 이벤트에 참여했고, 그때 '개인정보 제공 및 활용동의서'에 별생각 없이 체크한 것이 발단이었다.

금융회사들이 개인정보를 문어발식으로 수집, 마케팅에 마구잡이로 활용하면서 고객들 불만이 들끓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경품 이벤트가 '미끼'다. 소비자들은 경품행사가 개인정보 수집용이란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저 경품이나 쿠폰을 타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각종 신상 정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곧이어 무차별적인 전화 영업이 시작되고, 그제야 소비자들은 '아차'하며 섣부른 행동을 후회한다. 경품 추첨이나 현금 당첨 등의 현란한 광고 문구를 내세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금융회사들의 얌체 영업에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짜 경품 타려다 개인정보 완전 노출

"놀이공원 1년치 자유이용권을 드립니다." "명품백을 선물로 드립니다." 요즘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물론 심지어 피자가게나 치킨집에서도 경품권을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물건 구입 여부와 상관없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결혼 유무·자녀 수·직업 등을 써내면 추첨을 통해 각종 선물을 나눠준다는 내용이다. 소비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빈칸을 다 채우고 이벤트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렇게 낱낱이 공개한 소중한 나의 개인정보는 경품 행사보다는 각종 보험사나 카드사의 전화 영업에 활용된다. 경품 이벤트는 그저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얄팍한 상술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경품 행사를 주최하는 회사와 후원하는 회사, 주관하는 회사 등이 전부 따로 있기 때문에 본인이 기입한 개인정보가 적어도 두 곳, 많게는 대여섯개 업체에까지 넘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한 광고 대행업체 관계자는 "보험이나 카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소개받고 상담을 하고 싶어서 이벤트에 참여하는 고객들도 많다"며 "고객들이 경품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개인정보를 활용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동의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금융상품 상담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경품을 준다면 문제가 안 되지만, 공짜로 경품을 준다고 해놓고 개인정보만 쏙 빼서 챙긴 다음 영업을 하는 것은 소비자 기만이나 다름없다"고 반박한다.

◆범죄에 악용될 수도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의 문제점은 단순히 고객을 불편하게 한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유통된 정보가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상 개인정보는 금융회사들이 직접 수집하는 게 아니라, 위탁업체가 대행해서 모은 뒤에 금융회사 등에 넘겨주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런 위탁업체들은 현재 10여곳이 활동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인정보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옮겨지기 때문에 보안이 허술해진다.

실제로 지난달 인천에서는 총 6만4000여명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험사에 팔아넘기려 한 일당이 붙잡혔다. 이들은 보험사를 사칭해 '경품 당첨, 30만원 상품권을 드립니다. 수령자 정보 회신 필요'란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그리고 경품 행사에 참여토록 유도하고, 건당 1700~3500원에 팔아치우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경품 행사나 선물 당첨 등의 문구는 고객 눈길을 끌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서도 많은 양의 개인정보를 모을 수 있어 거의 모든 보험사들이 이 같은 낚시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개인정보는 어디에서 수집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홈쇼핑에서 받은 고객정보는 정확해서 양질이기 때문에 S급이고, 백화점은 A급, 카드사는 B급 등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문경연 한국신용정보 팀장은 "주민등록번호나 자녀 수 등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엔 일단 의심하는 게 좋다"며 "개인정보를 노출할 때는 어떤 판촉활동에 쓰이는지, 얼마나 오래 보관되는지 등을 확인해 신상정보 노출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케팅 이용 마세요" 요구 가능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융회사나 일반 기업들의 지나친 마케팅 활동으로 고통받아도 소비자 입장에선 뾰족한 대응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법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신의 신용정보를 금융회사나 일반 기업의 마케팅에 이용하도록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뒤늦게 철회할 수 있게 됐다. 전화나 메시지를 받으면, 팩스나 서면 등의 방법을 통해 그 업체에 개인정보 활용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해당 업체는 소비자로부터 철회 요구가 접수되면 1개월 이내에 해당 신용정보 이용을 중지해야 한다.

다만 아직까진 적극적으로 이런 제도를 활용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동의 철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최근에는 개인정보 유출사고시 피해를 보장해 주는 보험 상품도 등장했다(차티스손해보험). 개인정보가 부정사용되면서 금전적인 손실이 발생하면 최대 500만원까지 지급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