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하모니', 배우들이 그만 좀 울면 안될까요?
입력 : 2010.02.08 11:16
영화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상투성이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보면, 상투적이지 않은 얘기는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그냥 회자되는 게 아니다. 상투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영화를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단, 전제가 있다. 상투성을 보완해줄 새로운 '무엇'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사냥꾼의 밤'(1955)이라는 영화가 있다. 찰스 로튼 감독의 작품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 중이다.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등 유명 영화인들의 추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천국의 친구들'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내용은 이렇다. 한 절도범이 출감 후 교도소에서 만난 사형수의 집을 찾아간다. 목사 행세를 하면서 사형수가 숨겨놓은 1만 달러를 빼앗으려고 온갖 협박과 술수를 동원한다. 사형수의 아내와 위장 결혼하고, 그녀를 살해한다. 사형수의 어린 오누이는 끝까지 돈 숨긴 곳을 털어놓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나룻배를 타고 도망친다. 천사같은 할머니를 만나 구원받는다. 사냥꾼은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 스토리를 다 듣기 전에, 금방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설화다. 호랑이가 가짜 목사(사냥꾼)로 바뀌었다. 엄마의 죽음, 오누이의 탈출과 구원, 호랑이의 죽음 등 나머지 모티프는 동일하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 전래 설화와 1950년대 미국 영화의 스토리가 이처럼 똑같다니. 거꾸로 말하면, '사냥꾼의 밤'이 상투적이라는 얘기다. 뼈대만 보면 그렇다. 지구촌 흥행 1위작 '아바타'도 서사의 상투성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사냥꾼의 밤'이나 '아바타'에는 상투성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개성과 새로움이 있다.
'하모니'(감독 강대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엉겁결에 남편을 죽인 정혜(김윤진)는 교도소에서 아들을 출산한다. 그곳에서 합창단을 조직한다. 아들과 특박을 나가기 위해서다. 티격태격하던 수감자들은 합창단원이 되면서 서로 마음을 열고 화해한다. 불편했던 가족들과도 화해한다. 교도소 밖에서의 공연은,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더 감격적인 무대가 된다. 결국 비극적인 이별을 한다.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결말도 대략 예상할 수 있다.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교도소 합창단 혹은 사형수들의 우정과 사랑이라면, 뭔가 짠한 내용이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어떤 관객은 영화 중반 쯤부터 눈물을 훔친다. 훌쩍거리는 소리도 종종 들린다. 그렇다면 '하모니'의 전략은 성공한 것일까?
아니다. 몇몇 관객의 눈물을 짜냈으니 성공했다고 자평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오해다. 오히려 '하모니'는 상투성이 영화에서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보여준다. 설정보다 연출의 문제다. 서사 전개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를 입양하고 돌아서다 되돌아가는 정혜의 행동, 공연이 끝난 후의 눈물 에피소드, 예원(강유미)과 엄마, 문옥(나문희)과 딸의 화해 등이 그렇다. 인물, 전개, 미장센 등 각 요소가 너무나 익숙하다. 더 큰 문제는, 상투성을 보완해줄 새로운 '무엇'은 없고, 더 진부한 눈물이 흘러넘친다는 점이다. 아들의 입양과 그 이후 서사가 일관성 없이, 따로따로 흘러가는 것도 어색하다.
'하모니'는 눈물을 짜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상업영화라면 더 세심한 배려와 전략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하모니'는 막무가내다. 최루탄을 마구 뿌려댄다. 헤어지며 울고, 화해하며 울고, 고마워서 울고, 슬퍼서 운다. '배우들이 그만 좀 울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아로 자란 정혜는 남편을 죽이고 아들마저 떠나보낸 뒤, 마지막에 문옥을 "엄마"라고 부른다. 그러나 곡절많은 여인의 가슴 아픈 외침은 맥없이 스러진다. 범람하는 눈물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일부 조연 배우들의 과잉 연기도 거슬린다.
합창을 립싱크로 처리한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교도소 합창단원들은 대부분 노래와 담 쌓고 살았다. 심지어 정혜는, 그녀가 자장가를 부르면 자던 아이도 깨던 음치였다. 그런데 불과 6개월만에 천상의 목소리로 변한다. 연출 의도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게 리얼리티의 문제까지 감싸주는 건 아니다.
'하모니'는 아이의 탄생으로 문을 열고, 사형수의 죽음으로 문을 닫는다. 그 사이에서 수감자들의 희로애락과 수많은 사연이 출렁거린다. 충분히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영화는 감동보다 피로감을 더 안겨준다. 절제의 미덕이 아쉬운 이유다. 그 때문에 나문희의 원숙한 연기가 빛을 잃었다.
< 임정식기자 dada@sportschosun.com>
예를 들어 보자. '사냥꾼의 밤'(1955)이라는 영화가 있다. 찰스 로튼 감독의 작품이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 중이다.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등 유명 영화인들의 추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천국의 친구들'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내용은 이렇다. 한 절도범이 출감 후 교도소에서 만난 사형수의 집을 찾아간다. 목사 행세를 하면서 사형수가 숨겨놓은 1만 달러를 빼앗으려고 온갖 협박과 술수를 동원한다. 사형수의 아내와 위장 결혼하고, 그녀를 살해한다. 사형수의 어린 오누이는 끝까지 돈 숨긴 곳을 털어놓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나룻배를 타고 도망친다. 천사같은 할머니를 만나 구원받는다. 사냥꾼은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 스토리를 다 듣기 전에, 금방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설화다. 호랑이가 가짜 목사(사냥꾼)로 바뀌었다. 엄마의 죽음, 오누이의 탈출과 구원, 호랑이의 죽음 등 나머지 모티프는 동일하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 전래 설화와 1950년대 미국 영화의 스토리가 이처럼 똑같다니. 거꾸로 말하면, '사냥꾼의 밤'이 상투적이라는 얘기다. 뼈대만 보면 그렇다. 지구촌 흥행 1위작 '아바타'도 서사의 상투성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사냥꾼의 밤'이나 '아바타'에는 상투성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개성과 새로움이 있다.
'하모니'(감독 강대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엉겁결에 남편을 죽인 정혜(김윤진)는 교도소에서 아들을 출산한다. 그곳에서 합창단을 조직한다. 아들과 특박을 나가기 위해서다. 티격태격하던 수감자들은 합창단원이 되면서 서로 마음을 열고 화해한다. 불편했던 가족들과도 화해한다. 교도소 밖에서의 공연은,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더 감격적인 무대가 된다. 결국 비극적인 이별을 한다.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결말도 대략 예상할 수 있다.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교도소 합창단 혹은 사형수들의 우정과 사랑이라면, 뭔가 짠한 내용이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어떤 관객은 영화 중반 쯤부터 눈물을 훔친다. 훌쩍거리는 소리도 종종 들린다. 그렇다면 '하모니'의 전략은 성공한 것일까?
아니다. 몇몇 관객의 눈물을 짜냈으니 성공했다고 자평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오해다. 오히려 '하모니'는 상투성이 영화에서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보여준다. 설정보다 연출의 문제다. 서사 전개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를 입양하고 돌아서다 되돌아가는 정혜의 행동, 공연이 끝난 후의 눈물 에피소드, 예원(강유미)과 엄마, 문옥(나문희)과 딸의 화해 등이 그렇다. 인물, 전개, 미장센 등 각 요소가 너무나 익숙하다. 더 큰 문제는, 상투성을 보완해줄 새로운 '무엇'은 없고, 더 진부한 눈물이 흘러넘친다는 점이다. 아들의 입양과 그 이후 서사가 일관성 없이, 따로따로 흘러가는 것도 어색하다.
'하모니'는 눈물을 짜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상업영화라면 더 세심한 배려와 전략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하모니'는 막무가내다. 최루탄을 마구 뿌려댄다. 헤어지며 울고, 화해하며 울고, 고마워서 울고, 슬퍼서 운다. '배우들이 그만 좀 울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아로 자란 정혜는 남편을 죽이고 아들마저 떠나보낸 뒤, 마지막에 문옥을 "엄마"라고 부른다. 그러나 곡절많은 여인의 가슴 아픈 외침은 맥없이 스러진다. 범람하는 눈물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일부 조연 배우들의 과잉 연기도 거슬린다.
합창을 립싱크로 처리한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교도소 합창단원들은 대부분 노래와 담 쌓고 살았다. 심지어 정혜는, 그녀가 자장가를 부르면 자던 아이도 깨던 음치였다. 그런데 불과 6개월만에 천상의 목소리로 변한다. 연출 의도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게 리얼리티의 문제까지 감싸주는 건 아니다.
'하모니'는 아이의 탄생으로 문을 열고, 사형수의 죽음으로 문을 닫는다. 그 사이에서 수감자들의 희로애락과 수많은 사연이 출렁거린다. 충분히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영화는 감동보다 피로감을 더 안겨준다. 절제의 미덕이 아쉬운 이유다. 그 때문에 나문희의 원숙한 연기가 빛을 잃었다.
< 임정식기자 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