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의형제'
입력 : 2010.02.08 16:14
| 낭만적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되나… |
'의형제'는 2010년 한국영화 첫 화제작이다. 올해의 대표작 중 한 편이 될 것이다. 장 훈 감독은 이 영화로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의 빼어난 성과가 일회성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송강호의 연기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는 차라리 사족이다. 강동원은 송강호의 카리스마에 눌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꽤 씻어냈다. 남자배우 투톱의 연기 조화도 수준급이다. 소재, 연출, 연기 등에서 두루 호평받을 만하다.
장 감독은 두툼한 뚝심을 보여준다. 쉽지 않은 소재를 촘촘히 엮어가면서, 끝까지 자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를 발휘한다.
'의형제'의 설정 자체는 비현실적이다. 남한의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북한의 남파공작원 지원(강동원)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서울 시내에서 총격전을 벌였던 사이다. 한규는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파면당하고, 지원은 배신자로 찍혀 버림받는다. 어둠의 존재가 된다. 두 사람은 입에 풀칠하며 근근이 살다가, 6년 후 우연히 만나 팀을 이뤄 일한다.
분단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설정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있었다. 장 감독의 사부라 할 수 있는 김기덕 감독이 '야생동물보호구역'(1997)에서 보여준 바 있다. 각자 남북한에서 버림받은 사내들의 초상화였다. 이 영화는 프랑스 파리가 배경이어서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고, 그들의 언어는 사납고 절규는 거칠어 소름돋았다. '의형제'는 훨씬 유연하다. 시공간이 가깝고 익숙하다. 2000년대 중반, 서울이 주요 배경이다. 무엇보다 한규와 지원이 만나는 과정까지의 세밀한 전개가 설득력을 갖는다. 현실성이 별로 없는 설정을 그럴 듯한 이야기로 꾸며낸다. 그래서다. '의형제'는 리얼리티가 뛰어나다. 여기에 웃음과 액션, 드라마를 적절히 배치하는 템포 조절도 능숙하다.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한 명이 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의형제'는 영리하다. 어설픈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어던졌다. 대신 가족애를 기본 서사로 도입한다. 분단을 소재로 하면서도 사랑과 우정을 끌어들여 성공한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차별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다.
가족애는 보편적인 정서다. 관객의 공감을 자아낼 여지가 많다. 지난해 '해운대'에서 이미 위력을 발휘했다. 국정원, 간첩, 빨갱이, 칼,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와 같은 험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날선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서로 적이었던 과거를 알고, 그래서 신경 곤두세워 경계하던 한규와 지원이 결정적으로 소통하는 계기도, 상대를 보듬어 안는 이유도 가족이다. 결핍의 상처다. 한규는 지원에게, 지원은 한규에게 거울 같은 존재다.
이 결핍과 상처는 장 감독의 영화세계를 집약한 단어다. '영화는 영화다'의 인물들은 흰색(연예스타), 검은색(깡패) 옷을 입고 나왔다. 뻘밭에서 뒤엉켜 싸우면서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의형제'는 남북한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에 있었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상처를 떠안고 사는 두 남자 이야기다. 이념보다 가족이 더 크고 소중한 세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같은 많은 장점은, 낭만적인 해피엔딩에 가려 빛이 흐려진다. 용두사미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가파르게, 숨가쁘게 치솟아오르던 갈등이 중반에 갑자기 푹 꺼진 탓이다. 한규가 파면되고 지원은 버림받은 후, 진짜 스토리가 시작된 후, 영화는 큰 파도 없이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간다. 비슷한 행위들이 반복되고, 한규 오피스텔에서 벌어지는 여러 신경전들도 목숨을 걸 만큼 치열하지 않다. 갈등은 찻잔 안에서만 물결친다.
이는 캐릭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특히 지원이 그렇다. 그는 남파공작원답지 않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다. 모든 능력에서 도 한규를 압도한다. 다소 어리숙하고 건들거리는 한규와 달리 시종일관 진지하다. 하지만 한규에 비해 캐릭터의 입체성이 부족하다. 그의 고뇌와 성격은 단선적이고 평면적이다. 또 있다. '의형제'는 남파 간첩과 그 간첩을 잡던 국가유공자 출신이 이끌어가는 투톱 영화다. 그런데 두 인물의 갈등이 뜨겁지 않다. 두 사람은 직접 맞부딪치지 않는다. 초반의 총격전 장면에서도 그랬다. 그러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사소해 보이지만, 언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도 눈에 띈다. 간첩활동 현장에서 체포된 지원의 행적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떻게 금방 자유의 몸이 되고, 그 많은 돈을 마련했을까. 지원이 자신은 변절자가 아니라고 되풀이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인 표현일 수 있다. 배신과 변절은 지원의 신념을 거꾸로 설명한다. 그런데 그 비중에 비해 전후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관객이 지원의 내면에 스며들지 못한 이유다. 체포된 후 그가 북한을 배신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보다 친절한 암시가 필요해 보인다. 그랬다면 영화의 부피가 훨씬 두꺼워졌을 것이다. 손쉬운 결말에 대한 아쉬움도 떨쳐버릴 수 없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
장 감독은 두툼한 뚝심을 보여준다. 쉽지 않은 소재를 촘촘히 엮어가면서, 끝까지 자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를 발휘한다.
'의형제'의 설정 자체는 비현실적이다. 남한의 국가정보원 요원 한규(송강호)와 북한의 남파공작원 지원(강동원)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서울 시내에서 총격전을 벌였던 사이다. 한규는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파면당하고, 지원은 배신자로 찍혀 버림받는다. 어둠의 존재가 된다. 두 사람은 입에 풀칠하며 근근이 살다가, 6년 후 우연히 만나 팀을 이뤄 일한다.
분단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설정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있었다. 장 감독의 사부라 할 수 있는 김기덕 감독이 '야생동물보호구역'(1997)에서 보여준 바 있다. 각자 남북한에서 버림받은 사내들의 초상화였다. 이 영화는 프랑스 파리가 배경이어서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고, 그들의 언어는 사납고 절규는 거칠어 소름돋았다. '의형제'는 훨씬 유연하다. 시공간이 가깝고 익숙하다. 2000년대 중반, 서울이 주요 배경이다. 무엇보다 한규와 지원이 만나는 과정까지의 세밀한 전개가 설득력을 갖는다. 현실성이 별로 없는 설정을 그럴 듯한 이야기로 꾸며낸다. 그래서다. '의형제'는 리얼리티가 뛰어나다. 여기에 웃음과 액션, 드라마를 적절히 배치하는 템포 조절도 능숙하다.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한 명이 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의형제'는 영리하다. 어설픈 이데올로기의 옷을 벗어던졌다. 대신 가족애를 기본 서사로 도입한다. 분단을 소재로 하면서도 사랑과 우정을 끌어들여 성공한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차별화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다.
가족애는 보편적인 정서다. 관객의 공감을 자아낼 여지가 많다. 지난해 '해운대'에서 이미 위력을 발휘했다. 국정원, 간첩, 빨갱이, 칼,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와 같은 험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날선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서로 적이었던 과거를 알고, 그래서 신경 곤두세워 경계하던 한규와 지원이 결정적으로 소통하는 계기도, 상대를 보듬어 안는 이유도 가족이다. 결핍의 상처다. 한규는 지원에게, 지원은 한규에게 거울 같은 존재다.
이 결핍과 상처는 장 감독의 영화세계를 집약한 단어다. '영화는 영화다'의 인물들은 흰색(연예스타), 검은색(깡패) 옷을 입고 나왔다. 뻘밭에서 뒤엉켜 싸우면서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의형제'는 남북한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에 있었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상처를 떠안고 사는 두 남자 이야기다. 이념보다 가족이 더 크고 소중한 세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같은 많은 장점은, 낭만적인 해피엔딩에 가려 빛이 흐려진다. 용두사미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가파르게, 숨가쁘게 치솟아오르던 갈등이 중반에 갑자기 푹 꺼진 탓이다. 한규가 파면되고 지원은 버림받은 후, 진짜 스토리가 시작된 후, 영화는 큰 파도 없이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간다. 비슷한 행위들이 반복되고, 한규 오피스텔에서 벌어지는 여러 신경전들도 목숨을 걸 만큼 치열하지 않다. 갈등은 찻잔 안에서만 물결친다.
이는 캐릭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특히 지원이 그렇다. 그는 남파공작원답지 않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다. 모든 능력에서 도 한규를 압도한다. 다소 어리숙하고 건들거리는 한규와 달리 시종일관 진지하다. 하지만 한규에 비해 캐릭터의 입체성이 부족하다. 그의 고뇌와 성격은 단선적이고 평면적이다. 또 있다. '의형제'는 남파 간첩과 그 간첩을 잡던 국가유공자 출신이 이끌어가는 투톱 영화다. 그런데 두 인물의 갈등이 뜨겁지 않다. 두 사람은 직접 맞부딪치지 않는다. 초반의 총격전 장면에서도 그랬다. 그러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사소해 보이지만, 언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도 눈에 띈다. 간첩활동 현장에서 체포된 지원의 행적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떻게 금방 자유의 몸이 되고, 그 많은 돈을 마련했을까. 지원이 자신은 변절자가 아니라고 되풀이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인 표현일 수 있다. 배신과 변절은 지원의 신념을 거꾸로 설명한다. 그런데 그 비중에 비해 전후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관객이 지원의 내면에 스며들지 못한 이유다. 체포된 후 그가 북한을 배신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보다 친절한 암시가 필요해 보인다. 그랬다면 영화의 부피가 훨씬 두꺼워졌을 것이다. 손쉬운 결말에 대한 아쉬움도 떨쳐버릴 수 없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