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대한바둑協 통합 물거품 되나

바둑계 최대 현안으로 주목받아온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대바협) 간의 통합 논의가 결렬 수순에 들어갔다. 통합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2008년 11월부터 1년 넘게 양측이 펼쳐온 통합작업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기원은 프로 중심의 재단법인체이고 대바협은 아마추어 업무를 총괄하는 사단법인이다. 바둑의 체육화 과정에서 2005년 11월 대바협 창립과 함께 2원화됐다. 현재 한국기원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이사장을, 대바협은 조건호 프라임그룹 상임고문이 회장을 맡고 있다. 조 회장은 한국기원 부이사장이기도 하다.

바둑계는 이 두 조직이 통합할 경우 ▲대한체육회 내 55개 정가맹 단체 중 외형으로 현재의 45~50위 권에서 10위 권으로 도약할 수 있고 ▲양립체제 고착화로 인한 주도권 다툼의 개연성을 미리 차단하며 ▲시너지 효과로 바둑 중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 속에 지켜봐 왔다.

서로 다른 법인 형태가 최대 걸림돌로 보였으나 대한체육회가 "가맹단체 규정만 준수하면 재단법인체로 등록해도 무방하다"고 회신하면서 통합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양측은 지난해 12월 29일 "이사장이 대바협 회장을 겸하면서 통합법인을 대표하고, 대바협을 대변할 수석부회장을 선임해 이사장으로부터 업무 일부를 위임받는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약 열흘 후인 올해 1월 8일 사태는 급반전했다. 대바협이 "대한체육회에 등록할 단체의 회장은 반드시 조건호 대바협 회장이 맡아야 한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

이와 관련해 양성모 대바협 부회장은 "조 회장이 12월 합의를 수용한 뒤 대바협 일부 이사들이 지나친 양보라고 반발하면서 입장이 바뀌게 됐다"고 해명했다. 양 부회장은 바둑계 통합 건을 대학 경영에 비유, "기원은 재정을 총괄하는 재단이사장, 대바협은 대외적으로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 역할을 각각 맡는 게 이상적"이란 논리를 폈다.

그러나 한국기원측은 "이사회 의장을 맡아 재정만 책임지고 회장 명칭은 내놓으라는 것은 무리한 제안"(한상열 사무총장)이라며 상대방의 합의 번복을 이해 못 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태가 악화되자 한국기원 허 이사장은 자신도 참가하는 양측 간 확대 좌담회를 1월 28일 열자고 제의했으나 대바협에 의해 거부됐다.

통합 결렬의 이면엔 한국기원의 주축 세력인 프로기사와 대바협 의사결정 기구인 대의원(시도지부 회장 등) 간의 상호 불신과 자존심 싸움이 깔려 있다. 일부에선 양측 수뇌부의 자세는 대승적인데 두 조직 일부 실무진의 통합을 향한 진정성이 진짜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자신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통합에 부정적인 논리를 동원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광저우(廣州)아시안게임이다. 지금까지는 프로기사 선수 파견 방침 아래 대바협이 행정을 총괄해 왔지만 통합 결렬 후에도 선수 선발, 훈련, 포상 등에 협조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양측은 대바협에 대한 재정 보조와 관련해서도 시각이 다르다. 한국기원은 "정가맹 단체가 될 때까지만 지원한다는 게 당초 약속이었다. 대바협은 체육회로부터 가맹단체 예산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대바협은 "체육 경기단체 대부분이 '큰 집'(프로)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입장이다.

바둑계는 ▲동호인 수 감소 ▲중국의 부상(浮上)에 따른 상대적 경기력 저하 ▲지망생 격감 등 최근 여러 악재 속에 바둑 출판물, 전문 인터넷 업체, 시중 기원 등 관련산업 전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같은 뿌리의 두 단체가 힘을 합쳐도 타개가 쉽지 않은 판에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