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마주친 天敵

〈제1보〉(1~26)=기량이나 정글 안에서의 위상(位相)은 대등한데 도무지 이해 못 할 상대 전적이 만들어질 경우 사람들은 두 사람을 천적(天敵)관계라고 부른다. 박영훈과 쿵제(孔杰)의 관계가 그렇다. 둘은 지난 몇 년간 제각기 자국 베스트 5 안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지켜온 기사들. 그런데도 상대 전적은 5승 무패, 쿵제의 일방적인 우세다. 여섯 번째 맞는 이 대국을 통해 혹시 그 비밀의 일부라도 밝혀낼 수 있을까.

11까지는 90년대 후반 일본의 요다(依田紀基)가 흑번으로 애용, 유행시켰던 포진. 포석엔 신안(新案)특허가 없으니 얼마든지 복사(複寫)가 가능하다. 12로는 과거엔 참고도 1로 침입하는 수가 많았다. 15까지도 충분한 한 판. 12론 물론 '가'의 침입도 훌륭한 작전이다.

9 자리에 우군이 있으면 흑 21 이음이 강력해진다. 22는 정수로, 참고2도 1로 뛰었다간 4까지 끊어진다. 26으로 붙인 데까지 서로 갈 길을 가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초반의 소비시간. 쿵제가 거의 노타임 행진인 데 반해 박영훈은 시간을 물 쓰듯 하고 있다. 26은 흑이 놓아도 선수인 곳이어서 당연한 붙임이건만 15분이나 투입했다. 여기서 흑 '나'의 젖힘은 성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