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살벌해졌다

〈제3보〉(52~73)=다독(多讀)과 정독(精讀), 둘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독서 습관일까. 프로기사들의 기보(棋譜)를 통한 공부방식도 이와 매우 흡사하다. 남이 둔 바둑에 1시간 이상씩 매달려 대국자의 생각을 철저히 뜯어보는 기사들이 있는 반면, 박영훈처럼 15분 남짓 걸려 한 판을 번개처럼 놓아보는 유형도 있다. 입단 전부터 지금까지 이 방식으로 매일 20판 이상씩 검토해 온 박영훈은 "직접 연습대국보다 남의 기보를 복기하는 게 훨씬 공부가 된다"고 말한다.

흑이 중원에서 억눌리며 비축했던 힘을 ?Y를 통해 분출하기 시작했다. 52 이하 59까지는 예견됐던 진행. 여기서 60으로 61에 단수쳐 흑의 꼬리를 늘이는 전략은 어땠을까. 그게 참고도인데, 하지만 10 이후 백은 A로 끊기는 약점 때문에 마음 놓고 싸울 수가 없다. 62 도생(圖生)은 절대.

63, 64로 쌍방 늘어 중앙 싸움은 계속된다. 65는 우중앙 흑의 자체 삶을 확실히 하면서 우변 백을 추궁하는 수. 동시에 '가'의 끼움도 엿보고 있다. 68은 '나'가 일감(一感)이지만 흑 '다' 때 둘 곳이 마땅치 않다. 68에 흑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69~73으로 우지끈 끊어왔다. 갑자기 살벌해진 상황에서 오전 대국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