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일본계 대부업체 '대박'… 순익 1000억 넘기도

금융위기 이후인 작년 9월 일본계 대부업체 A사는 약 900명의 임직원이 제주도로 1박2일 워크숍을 다녀왔다. A사 관계자는 "장기 근속자들을 표창하는 등 전체 임직원 간의 화합을 다지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당시 일부 시중은행 임원들이 임금을 반납하는 등 초비상 경영에 들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지난해 은행과 저축은행 등 주력 금융회사들이 금융위기 충격으로 서민 대출을 기피하고 있는 사이에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대박'을 터트렸다.

16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대출 잔액 기준으로 국내 대부업계 1~2위를 차지하는 에이앤피파이낸셜(러시앤캐시)과 산와머니는 지난해 10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자산 규모가 수백조원에 달하는 일부 국내 은행들의 순이익이 수천억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총자산이 1조원 내외인 대부업체들이 호황을 누린 것이다. 러시앤캐시는 재일교포, 산와머니는 일본인이 최대주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예정대로 오는 6월 이자상한선을 대폭 낮추게 되면 일본계 대형 대부업체들의 한국 진출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은행보다 이익 많이 낸 대부업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출 잔액 기준 국내 대부업체 1위 브랜드인 러시앤캐시를 운영하는 에이앤피파이낸셜은 지난 2009회계연도(2008년 10월~2009년 9월)에 총 4617억원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당기순이익은 1194억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2007년에 이어 또다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아직 실적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2위 업체인 산와머니도 2009회계연도(2009년 1월~2009년 12월)에 10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산와머니는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난 2008년 소폭 적자를 기록했지만 1년 만에 실적이 급격히 호전됐다.

작년 3월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대부업체 수는 약 1만6000개에 달하며, 이 2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일본계 자금이 한국 대부업시장을 장악한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출 잔액 기준으로 국내 1~10위 대부업체 가운데 절반이 일본을 비롯한 외국계인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 등이 서민금융 외면한 탓

외국계 대부업체들이 이처럼 국내 서민금융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은 은행이나 저축은행 같은 '제도권 금융회사'들이 저소득·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의 대출을 아예 기피하고 있다. 또 지난 1973년 서민금융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저축은행들의 가계대출 비중은 작년 말 현재 전체 대출금액의 12%에 불과하다. 그나마 가계대출 비중이 높은 일부 저축은행들은 30~40%대 고금리를 받고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부업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달금리가 낮고 저신용자 대출 노하우가 축적된 일본 업체들이 국내 대부업시장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대출시 고객의 동의를 얻어 국내 신용 정보회사의 고객 정보를 활용해 대출 심사를 하는 등 체계적인 대출 심사시스템을 구축했다. 러시앤캐시 관계자는 "대주주가 지금까지 한 번도 배당을 받아가지 않고 대출시스템 개선 등에 투자를 했기 때문에 업계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사들과 달리 이들 대부업체들은 신용도와 무관하게 법정 상한선인 연 49%의 금리를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신용도가 좋은 대출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국내 대부업체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주고객이지만 종종 신용이 좋은 사람 중에서도 월급 받으면 채워 넣을 생각으로 급전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런 고객은 대부업체 입장에서 리스크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본계 업체 몰려올 가능성

대부업계에서는 조만간 일본계 자금이 대거 몰려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오는 6월부터 일본의 대부업법이 개정되면서 현재 연 29%인 일본 대부업체들의 금리 상한선이 연 20%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일본에서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 일본 대부업체들이 연 49%의 금리를 적용할 수 있는 국내 시장으로 몰려올 것이란 얘기다.

앞서 작년 9월 총자산이 1조4105억엔(2008년 3월 기준)에 달하는 일본 내 4위 대부업체 다케후지가 국내 여신 전문회사 설립에 2대주주로 참여했다. 이외에도 몇몇 업체들이 작년부터 시장 조사 차원에서 우리나라에 다녀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국내 진출을 보는 시각은 양면적이다.

우선 이들이 막강한 자금력과 섬세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대부업체시장을 장악한 뒤 수익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다는 국부 유출을 우려하는 시각이다. 일본의 4대 대부업체로 꼽히는 아코무·프로미스·아이후루·다케후지는 지난 2008년 3월 기준으로 총자산이 약 1조4000억~1조8000억엔에 달한다. 이런 대형 업체들이 국내에 진출해 대부업시장을 장악할 경우 금융당국에서도 통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대부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반대로 대형 일본 대부업체들의 진출이 소비자들에게는 이득이 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은 금리 인하와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대부업시장은 상위 20여개 업체가 연 49% 금리 적용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만약 일본의 대형 업체들이 연 30%대 금리를 제시하면 다른 업체들도 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