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빛과 그림자

〈총보〉(1~149)=149로 바둑이 끝났지만 아마추어들에겐 미련이 남는다. 이대로 끝내기엔 뭔가 허전해 몇 수 더 두어보고 싶다. 참고도를 보자. 5까지 상변에서 부지런히 움직여 봐도 12에 이르면 A, B를 맞봐 두 눈(眼)이 확보되지 않는다. 설혹 산다고 해도 흑이 선수를 뽑아 '가'로 젖혀가면 이미 집으로도 모자라는 형세란 결론이 내려졌다.

백의 패인은 80과 90, 두 요충 차지에 앞서 선행 수순이 빠졌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두 번의 헛손질이 흑의 반격을 유발, 마침내 상중앙 백 대마 몰살이란 비극으로 이어졌다. 천적(天敵)을 꼭 꺾어야 한다는 심리상태가 혹시 패인은 아니었을까. 그런 초조감은 소비시간에서도 나타나 126수째부터 일방적인 초읽기에 몰렸다. 단명기였음에도 사용시간 총량제 방식으로 3시간을 넘게 썼다.

쿵제는 힘의 비축과 사용에서 유연함을 보여주며 간명하게 판을 정리, 결승 진출자다운 솜씨를 과시했다. 빛은 언제나 그림자를 동반하는 법. 박영훈이 치밀함과 정확함이란 자신만의 장기(長技)를 보여주지 못하고 대진표에서 사라져 버린 것은 아쉽다. 2년 연속 4강을 디딤돌 삼아 새봄엔 더 높은 곳에 자리하길 기대한다. (95…38, 149수 끝 흑 불계승, 소비시간 백 3시간10분42초, 흑 2시간35분5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