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곰은 '허니' 품에 안겼지만…

올해 환갑을 맞이한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뉴 저먼 시네마'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베르너 헤어초크가 시상식장에서 집행위원장 디터 코슬릭에게 "훌륭한 작품 선정(his wonderful selection)"을 치하했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증거다. 게다가 일반 관객들이 구매한 티켓 수는 30만여장으로 역대 최고라지 않은가.

그럼에도 터키의 중견 감독 세미 카플라노글루의 '허니(Honey)'에 영예의 황금곰상을 안겨준 심사위원들의 선택은 '지나치게 무난한' 감이 없지 않다. 시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에그'와 '밀크'에 이은 3부작 마지막 편으로 꿀을 채취하러 숲 속 깊이 들어갔다 죽은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여섯 살 소년의 성장담이다. 통일 20주년을 맞아 베를린이 선택한 '가족의 이별과 재회'라는 주제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스타일에서 모방의 혐의가 짙었다. 베를린에서 만난 터키의 한 신예 감독은 '허니'의 스토리라인이 태국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대병'(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베낀 것 아니냐며 목청을 높였다.

대사의 절제와 음악의 부재 등 전형적 작가주의·예술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허니'는 '열대병'은 말할 것도 없고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터키의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 영화 '우작'과 '스리 몽키스'들을 과도하다 싶으리만치 연상시킨다. 이 때문에 창의성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심사위원 대상과 알프레드 바우어 상을 동시에 거머쥔 루마니아의 신예 플로린 세르반의 '휘파람을 불고 싶으면, 난 불지(If I Want To Whistle, I Whistle)'는 데뷔작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극적 밀도를 구현한 수작이다. '2010 베를린의 발견'으로서 손색없는 수준급 문제작! 소년원 출감을 며칠 앞둔 열여덟 소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예상키 어려운 극 전개도 그렇지만, 별다른 이동 없이 동일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처리하는 기량이 그야말로 대단하다.

한편 감독상을 안은 로만 폴란스키의 '고스트 라이터'는 영국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인기 소설 '고스트(국내에서는 '고스트 라이터'로 출간)'를 토대로 빚어진 스릴러다. 영국 총리(피어스 브로스넌)의 회고록을 쓰는 대필 작가(이완 맥그리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현지 일일 소식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점에서도 4점 만점에 2.8점을 받으며 일찌감치 수상이 점쳐졌다. 이번 수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연출력도 그렇지만, 30여년 전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현재 가택연금 중인 감독에게 보내는 성원의 의미도 없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