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평행이론
입력 : 2010.02.23 13:37
| 증명이 아니라 설득이 필요하다 |
'평행이론'(감독 권호영)은 퍼즐 맞추기를 닮았다. 먼저 하나의 틀, 원형이 있다. 퍼즐 조각으로 빈 공간을 하나씩 채워나가듯, 현재의 인물과 사건은 퍼즐 조각이 된다. 이미 정해진 형태를 완성한다. 30년 전 한상준 판사의 살인사건은 원형이다. 2009년 김석현 판사의 살인사건은 동어반복이다. 퍼즐은 원형이 정해져 있다. '평행이론'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평행이론'은 흥미로운 가정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이 시차를 두고 같은 운명을 반복해서 살아간다는 설정이다. 평행이론이다. 실존인물인 미국의 대통령 링컨과 케네디를 예로 든다. 두 사람의 탄생, 대통령 당선, 사망 날짜와 장소, 암살자의 출신 지역 등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두 사람의 삶과 각종 기록을 교차로 보여준다. 평행이론 신봉자인 노교수(오현경)의 죽음도 배경으로 깔린다. 평행이론의 근거로 제시한다.
평행이론은 낯설다. 링컨과 케네디의 삶의 궤적이 똑같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소재가 신선하다. 반면 관객에게 평행이론이 무엇인지 설득해야 하는 것은 부담이다. 따라서 관건은 정해져 있다. 평행이론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느냐다. 그러나 '평행이론'이 이런 효과를 제대로 거뒀는지는 의문이다.
김석현(지진희)은 유능한 판사다. 최연소 부장판사에 임명된다. 집에서 성대한 축하파티를 연다. 이때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네 가족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겠다"는 험악한 내용이다. 협박은 현실로 나타난다. 며칠 후 김석현의 아내가 둔기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때 특이한 사실이 밝혀진다. 30년 전에 한상준 부장판사에게도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 최연소 부장판사, 미모의 아내의 피살, 아내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 인물의 이력은 철저하게 닮은꼴이다. 사건 내용과 날짜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평행이론을 무시하던 김석현은 점차 그 이론을 믿게 된다. 과거를 알면 미래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상준 사건을 파헤친다.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김석현 판사의 믿음이 아니다. 관객들도 평행이론을 믿고, 나아가 김석현의 생각에 공감하느냐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행이론에 대한 주장이나 증명이 아니라 설득이 필요하다. '평행이론'은 한상준과 김석현에게 일어난 사건이 30년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아내를 둘러싼 기괴한 소문, 취재기자의 죽음, 기타 살해된 인물과 주변 상황이 똑같은 점을 부각시킨다.
여기서 관객과 영화 사이에 틈이 생긴다. 관객은 평행이론에 대한 증명을 보고싶은 게 아니다. 링컨과 케네디, 한상준과 김석현의 삶이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고 해서 평행이론을 새로 믿을 관객도 없다. '평행이론'에서 한상준 사건은 퍼즐의 원판과 같다. 김석현 사건은 퍼즐 조각이다. 현재의 사건은 과거 사건의 틀에 맞춰진다. 인물, 사건, 에피소드, 날짜 등 어느 하나 예외가 없다. 영화에 의하면, 평행이론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평행이론'은 이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한다. 그저 평행이론을 보여주고, 증명하려고 애쓸 뿐이다. 퍼즐에서 조각을 맞춰가는 순서는 큰 변수가 아니다. 순서가 바뀌어도 최종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는 것, 피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운명이다. 김석현 판사는 운명론을 믿지 않는다. 두 사건의 일치는 우연이라는 것이다. 나중에는 운명론자가 된다. '평행이론'은 우리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평행이론과 운명론…. 영화는 이 지점에서 모호해진다. 시나리오가 비교적 정교하게 짜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계속 겉도는 이유다.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시킨 점도 무리수다. 링컨과 케네디, 두 부장판사의 사례만으로 평행이론을 일반화시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진희와 하정우는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반대로 상황을 꿰맞추기 위한 일부 설정과 성긴 편집은 몰입을 방해한다. 신선한 발상이 억지 춘향식 단선적 전개와 모호한 주제로 인해 빛을 잃었다. 확실한 문전 처리가 아쉽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
'평행이론'은 흥미로운 가정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이 시차를 두고 같은 운명을 반복해서 살아간다는 설정이다. 평행이론이다. 실존인물인 미국의 대통령 링컨과 케네디를 예로 든다. 두 사람의 탄생, 대통령 당선, 사망 날짜와 장소, 암살자의 출신 지역 등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두 사람의 삶과 각종 기록을 교차로 보여준다. 평행이론 신봉자인 노교수(오현경)의 죽음도 배경으로 깔린다. 평행이론의 근거로 제시한다.
평행이론은 낯설다. 링컨과 케네디의 삶의 궤적이 똑같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소재가 신선하다. 반면 관객에게 평행이론이 무엇인지 설득해야 하는 것은 부담이다. 따라서 관건은 정해져 있다. 평행이론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느냐다. 그러나 '평행이론'이 이런 효과를 제대로 거뒀는지는 의문이다.
김석현(지진희)은 유능한 판사다. 최연소 부장판사에 임명된다. 집에서 성대한 축하파티를 연다. 이때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네 가족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겠다"는 험악한 내용이다. 협박은 현실로 나타난다. 며칠 후 김석현의 아내가 둔기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때 특이한 사실이 밝혀진다. 30년 전에 한상준 부장판사에게도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 최연소 부장판사, 미모의 아내의 피살, 아내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 인물의 이력은 철저하게 닮은꼴이다. 사건 내용과 날짜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평행이론을 무시하던 김석현은 점차 그 이론을 믿게 된다. 과거를 알면 미래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상준 사건을 파헤친다.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김석현 판사의 믿음이 아니다. 관객들도 평행이론을 믿고, 나아가 김석현의 생각에 공감하느냐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행이론에 대한 주장이나 증명이 아니라 설득이 필요하다. '평행이론'은 한상준과 김석현에게 일어난 사건이 30년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아내를 둘러싼 기괴한 소문, 취재기자의 죽음, 기타 살해된 인물과 주변 상황이 똑같은 점을 부각시킨다.
여기서 관객과 영화 사이에 틈이 생긴다. 관객은 평행이론에 대한 증명을 보고싶은 게 아니다. 링컨과 케네디, 한상준과 김석현의 삶이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고 해서 평행이론을 새로 믿을 관객도 없다. '평행이론'에서 한상준 사건은 퍼즐의 원판과 같다. 김석현 사건은 퍼즐 조각이다. 현재의 사건은 과거 사건의 틀에 맞춰진다. 인물, 사건, 에피소드, 날짜 등 어느 하나 예외가 없다. 영화에 의하면, 평행이론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평행이론'은 이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한다. 그저 평행이론을 보여주고, 증명하려고 애쓸 뿐이다. 퍼즐에서 조각을 맞춰가는 순서는 큰 변수가 아니다. 순서가 바뀌어도 최종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는 것, 피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운명이다. 김석현 판사는 운명론을 믿지 않는다. 두 사건의 일치는 우연이라는 것이다. 나중에는 운명론자가 된다. '평행이론'은 우리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평행이론과 운명론…. 영화는 이 지점에서 모호해진다. 시나리오가 비교적 정교하게 짜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계속 겉도는 이유다.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시킨 점도 무리수다. 링컨과 케네디, 두 부장판사의 사례만으로 평행이론을 일반화시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진희와 하정우는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반대로 상황을 꿰맞추기 위한 일부 설정과 성긴 편집은 몰입을 방해한다. 신선한 발상이 억지 춘향식 단선적 전개와 모호한 주제로 인해 빛을 잃었다. 확실한 문전 처리가 아쉽다.
< 기획취재팀ㆍ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