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앙부일구'는 돌 안에 꼭꼭 숨었네

햇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측정하는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원래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안에 쏙 들어가 앉혀 있었다. 매일 수만대의 차량이 오가는 경복궁 앞 동십자각 일대는 1929년만 해도 왼편에 중학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는 민가가 옹기종기 자리해 있었다. 지금 여덟 개의 꽃문양이 남아 있는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은 1910년대는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꽃과 나비 등을 조합한 문양이었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고적·유물·인물·풍속을 조사하며 찍은 유리건판 사진자료 90여점을 전시하는 《조선의 궁궐과 경기전―유리건판 사진전》을 오는 4월 25일까지 갖는다. 이 사진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갖고 있는 유리건판 3만8000여장의 일부다. 유리건판은 빛에 감응하는 감광제(感光劑)를 유리판에 발라 건조시킨 것으로, 플라스틱 필름이 나오기 이전에 사용됐다.

이번 전시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덕수궁 등 조선왕조 5대 궁궐이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원래 모습과 1920~30년대 일제의 의도에 따라 궁궐이 철거되고 훼손돼가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 2008년 방화로 사라진 숭례문의 모습을 1910년대에 담은 사진 2점 등이 나온다. 특히 숭례문 사진은 성채와 2층으로 된 기와지붕을 사진 속에 꽉 들어차도록 찍어서 늠름한 기운을 뿜어낸다.

경복궁의 서문(西門)인 영추문(迎秋門)이 일제강점기 때 무너져 철거했을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눈길을 끈다. 지금 영추문은 1975년 원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약 40m 아래에 새로 지은 것이다. 매일신보 1926년 4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틀 전인 같은 달 27일 오전 10시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운행되던 전차의 진동으로 영추문이 붕괴됐다. 또 현재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自擊漏)가 원래는 창경궁에 설치돼 있었음도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왕실의 뿌리가 있는 전주 지역의 관련 유적인 경기전(慶基殿)과 조경단(肇慶檀)의 전경을 담은 사진 9점은 처음 공개된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은 1410년(태종 10년)에 창건돼 올해로 창건 600주년을 맞이한다. 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의 묘소인 조경단은 1899년 5월 고종 황제가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며 성역화했다. 문의 (063)223-5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