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래보기 대회 체험기] 29시간 13편 반, "아쉽다!"

[스포츠조선 T―뉴스 박현민 기자] 29시간 10분 22초, 14번째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탈락.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제 2회 CGV 영화 오래보기 대회'에 일반부문으로 정식 참가한 본인(박현민 기자)의 기록이다.

23일 오전 11시 접수 및 신체검사를 받고 12시 첫 영화 '워낭소리'부터 탈락이 결정된 '굿모닝 프레지던트'까지 당시 현장을 상세히 담아봤다.

▶ [첫 번째] 첫 영화 '워낭소리' 방심은 금물!

대회 시작 전 '제 1회 영화 오래보기 대회' 우승자 이수민 씨가 무대에 올라 "첫 영화라고 방심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덕분에 첫 영화부터 모두 긴장된 표정들이 역력했다. 영화 '워낭소리'가 워낙 잔잔한 분위기의 다큐멘터리 장르다 보니 오히려 참가자들은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는 모습들이다. 시작 전부터 눈 옆 관자놀이를 엄지 손가락으로 누르며 집중하는 모습이며, 찬 얼음통으로 찜질하는 모습도 보였다. 덩달아 기자도 준비한 수지침으로 (중지의 첫 마디 양 옆을 누르며) 눈의 피로를 풀며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 특성상 논밭에서의 핸들헬드(사람이 손으로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음) 기법이 자주 등장하며 참가자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예상대로 강적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마흔살 소 누렁이가 참가자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종을 딸랑딸랑 울려주고, 최원균 할아버지의 "안팔아" 등의 우직하고 소박한 대사들이 웃음을 자극해 졸음 막기를 도왔다. 또 종(種)을 뛰어넘은 최원균 할아버지와 누렁이의 모습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를 장시간 관람해야 하는 참가자들은 눈이 건조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눈물은 꼭 필요한 요소다. 결국 감정이 메마른 사람보다는 풍부한 사람이 '영화 오래보기 대회'에는 좀 더 유리한 셈. 규정상 안약을 넣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으니 영화 관람 중 자연스러운 진짜 눈물은 필수다.

▶ [두번째~다섯번째] 대작 퍼레이드 "잠들 틈이 없다!"

'워낭소리' 이후 굵직 굵직한 2009년 대한민국 흥행 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2번째 영화 '국가대표'(감독 김용화), 3번째 영화 '마더'(감독 봉준호), 4번째 영화 '해운대'(감독 윤제균), 5번째 영화 '박쥐'(감독 박찬욱)까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챙겨봤을 국내 명작 영화들. '한 번 본 영화들이 오히려 졸리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상영 내내 '아~ 역시 최고의 영화'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졸릴 틈이 없었다.

배우 하정우, 성동일, 김동욱, 김지석, 최재환 등이 주연한 '국가대표'는 쉼없이 참가자들을 웃고 울게 했다. '이런 영화라면 50편도 거뜬하겠는걸?'이라는 건방진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무리없이 넘어간 '국가대표' 때문인지 '마더'에서는 긴장을 풀었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복병이었다. 웃음도 울음도 없이 느슨하게 늘어진 분위기만 존재했다. 장르 특유의 끈적거림과 암울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긴장을 푼 참가자들의 발목을 하나 둘 움켜 잡았다. 5초 이상 화면에서 눈을 떼거나 감으면 자동 실격 처리. 좌석 양 옆에 설치된 11대의 카메라들의 적외선 촬영을 모니터링하는 진행 스태프가 실격 처리된 참가자들에게 다가와 바로 바로 영화관 밖으로 끌고 나갔다. 좌석 사이 통로로 천천히 다가오는 그들이 마치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느껴진 것은 비단 기자 뿐만이 아니었다.

'해운대'를 3번이나 본 기자는 박중훈의 "내가 니 아빠다!" 대사에서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떠올리며 또 한번 '피식'하며 무사 통과했다. 영화 '박쥐'는 낭자한 붉은 피에 잠이 '확!' 깨고, 송강호의 과감한 노출에 또 한번 잠이 '확!' 깼다. '박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잠시동안의 無 BGM에 잠시 걱정(대회 규정상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5초 동안 눈을 떼면 실격 처리)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 경과 후 음악이 흘러나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 [여섯~아홉번째] 23일 오후 10시 반 부터 다음날 오전 7시 반까지 '졸음과의 사투'

일반인들의 수면 시간. 오후 10시반부터 오전 7시반까지 '영화 오래보기 대회' 참가자들은 졸음과의 사투를 벌였다. 6번째 영화 '애자'(감독 정기훈), 7번째 영화 '내 사랑 내 곁에'(감독 박진표), 8번째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감독 원태연), 9번째 영화 '토끼와 리저드'(감독 주지홍)…. 상영표도 잔잔함의 연속으로 '좋지 않다', '위기다'라는 생각들이 기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의 뇌리를 스쳤다.

'애자'는 상영작 중 참가자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가장 많이 들렸던 영화다. 앞서 말했다시피 대회 중 눈물은 참 유용하다. 모녀간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화면에 잘 담아낸 '애자'는 여성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위험 시간대의 탈락자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오전 12시 29분 상영이 시작된 '내 사랑 내 곁에'는 위험했다. 이미 영화 6편을 몰아보며 13시간 가량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참가자들은 배우 김명민과 하지원의 섬세한 연기를 감상하기에 감각들이 무뎌질만큼 무뎌져 있었다. 그나마 깜짝 등장한 카메오 설경구가 이전 '해운대' 영화와 겹치기(?) 출연처럼 느껴지며 소소한 재미를 제공했다.

15시간 21분이 흐른 뒤 관람하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졸음보다 더 졸린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슬프며 잔잔한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와중에 후반부 화자의 시점까지 뒤엉키며 참가자들을 공격했다. 최루성 멜로… 8번째 영화로 썩 좋지 않다.

'토끼와 리저드'는 대회 최대의 고비였다. 참가자들에게는 거의 핵폭탄 처럼 작용했으며, 이는 대거 탈락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잠을 깨기 위해 발악에 가까움 몸짓을 보였다. 준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듯 보였다. 기자도 100번 넘게 손마디를 수지침으로 찔러대야 했다. 실제로 '토끼와 리저드'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사람들은 (이전 영화들에게 보냈던 박수보다 훨씬 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드디어 끝났다"는 환호였다.

▶ [열 번째~열 네번째] "아… 아쉽다!"

(상영관 내부에서 보이진 않았지만) 다음날 해가 떴다. 어느 정도 마의 고지를 넘어선 기분에 참가자들은 모두 약간의 안도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상영관 내부에서는 "이제는 별로 졸립지 않다", "이대로라면 기록 경신도 가능할 것 같다" 등의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열 번째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감독 김용균), 열 한번째 영화 '여배우들'(감독 이재용), 열 두번째 영화 '똥파리'(감독 양익준), 열 세번째 영화 '7급 공무원'(감독 신태라), 열 네번째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감독 장진)가 순차적으로 상영됐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잊을만 할때쯤 계속 이어지는 조승우의 칼부림 액션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은 군대에 가서 볼 수 없는 배우 조승우를 보는 것으로도 훈훈했다. '여배우들'은 적당한 가십 거리들에 눈요기가 연신 이어지며 졸립지 않았다. 대신 영화 특성상 저화질의 화면이 11회 연속적으로 영화를 관람한 참가자들의 눈을 공격해 "눈 아파" 발언이 속출했다. 저예산 영화 '똥파리'에는 핸드헬드가 계속 됐지만 잔인한 장면들과 대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욕들이 참가자들의 졸 틈을 주지 않았다. '7급 공무원'은 강지환이 나올 때마다 근처 여성 참가자 분이 "아, 귀여워!"를 연발해 근처 참가자들의 졸음까지 쫓아줬다.

기자는 결국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탈락했다. 29시간이 경과된 시점에서 장동건과 한채영이 화면에 등장하자 꿈과 현실이 혼동 됐을지도…. 정확히는 당시 영화 중간 등장한 조연 캐릭터들의 이전 영화들과의 겹치기 출연('마더'의 형사(윤제문)가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대통령 곁 보좌관 역할로 승진(?)해 출연)을 노트에 체크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안 졸았다"라고 우겨봤지만 적외선 카메라에 잡힌 화면에는 5초 이상 눈을 떼고 아래를 보는 기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걸려도 무조건 우기고 보는 참가자들을 위해 주최측은 이렇게 상영관 외부 모니터를 통해 해당 화면을 제시해 불협화음을 최소화 하려 노력했다.

결국 "꼭 1등 하겠다"는 심정으로 참가했던 이번 대회는 29시간 10분 11초의 한국기록원의 참가 확인증과 영화표 2장으로 탈락의 쓰라린 아픔을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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