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얘기, 비극아닌 결말 원했다"

지난달 25일 장훈(35) 감독의 아버지가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영화) 기사를 잘 써줘 고맙다"며 "신문사에 호두과자를 선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장 감독이 중국 여행 중이라 인터뷰 섭외가 되지 않던 차였다. "선물은 감사히 받은 것으로 할 테니 아드님과 인터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관객 430만명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인 '의형제' 연출자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됐다.

지난달 28일 광화문에서 만난 장 감독은 모범생 타입의 키가 훤칠한 남자였다. 그는 약간 쑥스러워하며 "아버지가 전화하셨다면서요"라고 말을 꺼냈다. "처음에 김기덕 감독님 밑에서 일을 시작할 땐 부모님 모르게 했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말씀드렸더니 역시 반대하셨어요.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서는 무척 좋아하셨죠. 김 감독님 영화도 그렇고 제 영화도 그렇고." 그는 2003년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연출부 막내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첫 출근날부터 밤을 새웠다는 그는 "라면만 먹는 줄 알았더니 밥을 시켜 먹기에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제작비 38억원인 '의형제'는 이미 손익분기점(200만명)을 훨씬 넘었고, 개봉 이후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손해만 보지 않았으면 했는데…. 김기덕 감독님이 '남의 돈으로 영화 찍을 때는 손해 안 보게 연출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영화는 영화다'부터 함께 일해온 루비콘픽쳐스의 송명철 대표와 김동철 프로듀서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의형제' 이후 장 감독에게는 10여건의 영화 연출 러브콜이 쇄도했다. 이미 그의 이름 앞엔 '흥행감독'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가 차기작으로 택한 '고지전(高地戰)'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자인 박상연 작가의 작품으로, 6·25 전쟁 당시 남북한 병사들의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다.

"흥행감독이란 말은 부담스럽습니다. 작품 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테니까요. 더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그만큼 책임도 커진다는 거죠." 그는 허튼소리는 물론 농담도 잘 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책임' 이야기를 강조하는 것으로 미뤄, 무척 신중한 성격인 듯했다.

아직 신인 감독인데 송강호와 강동원을 캐스팅한 사연이 궁금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송강호씨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어요. 지원이 역할은 좀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으면 했어요. 운 좋게도 송강호씨는 시나리오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바로 결정했는데, 강동원씨는 '전우치' 촬영이 막 끝나 좀 지쳐 있었죠. 제가 '동원씨, 저 믿고 한번 해요'라고 했더니 '그럴까요? '하면서 승낙했죠."

송강호와는 영화 이야기를 무척 많이 했고, 강동원은 의외로 털털한 사람이어서 편했다고 한다. "송강호씨는 일 끝나면 꼭 한잔하는 분인데, 동원씨를 늘 챙기더군요. 시간이 좀 지나니까 동원씨가 송강호씨에게 '한잔하셔야죠'하며 챙기더라고요."

장 감독의 연출에서는 군더더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가 말한 연출론은 이렇다. "제가 미술을 전공(서울대 시각디자인과)해서 그런지, 원을 그리는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그냥 동그라미를 그릴 수도 있지만, 원둘레 주변을 빼서 원을 남길 수 있죠. 저의 연출방법은 만들어 넣기보다 불필요한 것을 빼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의형제' 관람평 중엔 "결말이 비극이었다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꽤 있었다. 장 감독은 "남북 얘기는 무의식적으로 비극적 엔딩이 전제돼 있는 것 같다"며 "10년 전쯤 JSA나 다른 남북 소재 영화들도 비극이었지만, 이제는 해피엔딩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시네마 키드'는 아니었다. 대학 시절 감독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영화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해도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디자인보다는 영화가 그런 나의 생각과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같은 이름을 대면서 "꼭 자기가 쓴 시나리오로 연출해야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도 언젠가 내가 쓴 이야기를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영화 두 편을 본 관객들 역시 그가 쓰고 연출한 작품을 기다릴 것이다. 기다려야 하는 작품이 많아서, 한국 관객들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