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선 안 될 아름다운 드라마 '크레이지 하트'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에 대단히 만족할 것이다. 아니, 이 영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미국 영화 '크레이지 하트(4일 개봉)'는 괜찮은 음악영화로 알려졌지만, 음악은 이 뛰어난 영화의 얼개를 엮는 나사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나사들은 이 영화 속 인물들에 의해 아주 천천히, 그러나 깊숙이 제자리에 박힌다. 비루하거나 상처받은 영화 속 인물들은 비틀거리고 주저하지만 끝내 가야 할 길에 들어선다.

퇴물 컨트리 뮤지션 배드 블레이크(제프 브리지스)는 소도시 클럽을 전전하며 생계를 잇는다. 아내도 자식도 다 잊고 사는 그는 술병을 끼고 사는 알코올 중독자다. 어느 시골에서 그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여기자 진(매기 질렌홀)을 만나 새로 사랑에 눈뜬다. 몇 년째 변변한 노래 한 곡 쓰지 못하던 배드에게 진은 새로운 영감을 준다. 그러나 이미 남자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적 있는 진은 배드의 예술혼을 사랑하면서도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어느 날 배드는 진의 어린 아들과 함께 술집에 들렀다가 아이를 잃어버린다.

자신의 백밴드 멤버였던 후배가 공연마다 1만명 이상 동원하는 컨트리 스타가 된 사이, 57세가 된 배드는 클럽에서도 공연하고 볼링장에서도 노래한다. 그는 낡은 자동차에 악기며 장비를 싣고 매니저도 기사도 없이 전국을 혼자 떠돈다. 입에 붙느니 매니저 욕이고 신세한탄이다. 공연 전 대낮부터 마셔댄 위스키 탓에 정작 히트곡을 불러야 할 때 토악질을 하는 게 현재 이 사내의 음악인생이다.

그 인생은 주인공의 옆구리로 돌아간 버클과 벌어진 바지 지퍼같이 추레하고 민망하다(게다가 이 늙은 컨트리 가수는 왜 쉴 때마다 허리띠를 풀어놓는지). 그런 그가 잘나가는 후배의 콘서트 오프닝 무대를 거절하거나 "내 공연에서는 절대 CD를 팔지 않아"라고 고집부리는 건, 뮤지션십(musicianship)으로 위장된 자격지심(自激之心)일 뿐이다. 그런 갈지자 인생에 다가온 여자는 무책임한 남자에게 크게 한 번 데었던 이혼녀. 그녀는 속절없이 다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자신을 좀처럼 용납할 수 없지만, 기타 한 대 달랑 남은 채 삶의 황혼을 맞은 남자의 상처에 자신의 흉터를 맞대어 위안을 얻으려 한다.

이 영화로 데뷔한 스콧 쿠퍼 감독은 화면 치장에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원작 소설에 충실한 드라마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대개 정적(靜的)인 그의 화면은 설득적 영상의 기본 구도에 충실하다. 이 영화는 음악도 무척 좋지만, 코믹한 장면도 잦아 지루할 틈이 없다. 노(老) 뮤지션을 연기한 제프 브리지스의 매우 뛰어난 연기가 단연 최고다. 과거에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수퍼마켓 주인이 선물로 거저 준 위스키 한 병에 감동할 만큼 초라한 가수 역할을, 그는 진짜 그 사람인 것처럼 연기했다. 이 영화에선 올해 79세인 명배우 로버트 듀발의 최근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늙은 뮤지션의 인생 선배로 등장해, 흔들리는 두 주인공 사이에서 묵직한 추(錘) 역할을 한다.

이 영화는 물론 현재 음악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음악을 하려는 사람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또 한편으로는 매일 폭음하다시피 하는 알코올 중독자에게도 쓴 약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는 현재 자신이 정상 루트에서 이탈돼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삶의 등반가들에게, 어둠 속에 빛나는 나침반 같은 작품이다.

이번 주말에 이 영화를 본 뒤, 7일 열릴 아카데미상에서 제프 브리지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을지를 두고 내기 걸 것을 권한다. 올해 이미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짐작건대 다섯 번째 도전인 이번 아카데미에서 분명히 오스카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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