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때 '레디, 고' 소리 들려요"

'꿈'은 당시 TV 뉴스를 찍던 아이모(eyemo) 카메라로 촬영했다. 조명이 부족해서 날이 흐려지면 바로 촬영이 중단됐다. "숲 속에 가서 혼자 분장을 했는데, 저 멀리서 '레디, 고!'하고 소리치면 그게 메아리가 돼서 들렸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그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꿈'을 찍을 당시 신 감독은 영화 1편, 다큐멘터리 1편을 찍은 신인이었다. 최씨는 "젊은 감독이라서 그런지 신선한 연출이 많았다"고 했다. "신 감독 첫 영화 '악야'에 키스신이 있는데, 여배우가 키스하느라 발돋움하는 장면을 발아래에서 머리 쪽으로 '판―압(pan―up)'했더라고요. 그전에는 그런 키스신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 영화도 사라졌죠. 그 키스신을 다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 영화 필름들은 극장에서 내린 뒤 방치되다가 밀짚모자에 두르는 띠로 팔려나가곤 했다고 한다. 최씨는 "'악야'도 밀짚모자로 팔려 없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현재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의 각종 사업을 감수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제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니까 살아있을 때 해야겠더라고요. 그 일 간섭하느라 시간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서예를 배워볼 생각입니다." 그녀는 "뭐든지 할 일이 있으니까 늙을 새가 없다"며 "마음은 항상 서른아홉살"이라고 했다. 왜 하필 서른아홉이냐고 묻자 "인생도 좀 알고 일도 열심히 하던, 정말 좋은 때가 서른아홉살"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여전히 새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할까.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배우는 공연을 보면 무대에 뛰어올라가고 싶고 영화를 보면 프레임 속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으면 출연해야죠."

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최씨는 1926년생. 그러나 28년생 또는 30년생이란 보도도 있었다. 정확한 생년을 묻자 그녀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말했다. "그건 나중에, 살짝 가르쳐 줄게요."

●영화 '꿈'은

신상옥·최은희 첫 합작품

3일 공개된 영화 '꿈'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작년 8월 한 개인수집가로부터 입수해 일부 결함을 보정한 것이다. 이 영화는 35㎜ 흑백필름이지만, 이번에 입수한 것은 지방 상영용으로 추정되는 16㎜ 축소판 프린트다. 영상자료원은 앞으로 필름의 훼손 부분을 보수해 35㎜로 확대 복원, 5월 열릴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개관 2주년 기획전'에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꿈'은 춘원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결혼을 앞둔 양반집 딸 달례(최은희)를 본 직후 그녀를 연모하게 된 승려 조신(황남)이 그녀와 함께 달아났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되고, 그녀의 약혼녀에게 결국 발각돼 칼을 받게 되지만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내용이다. 이날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194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염세주의와 허무주의 영화의 색채가 깃든 영화로 신상옥 감독의 탐미적 성향이 강한 작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