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失足

〈제10보〉(153~169)=속(續)'실수 승부론'. 바둑에선 똑같이 한 번씩 실수를 주고받았더라도 그 '순서'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나중에 범하는 실착이 훨씬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바둑판은 유한(有限)하므로 종국(終局)에 가까운 실수일수록 만회할 기회가 줄어드는 이치다. '상대보다 적게 실수하라. 실수를 피할 수 없다면 상대방보다 먼저 실수하라.' 바둑은 후절수(後切手)에 시간 개념까지 더해 4차원의 게임이다.

백이 중앙서 피해를 보면서 형세는 오리무중이 됐다. 끝내기와 종반 경리(經理)가 승부를 가릴 참이다. 대국자들의 피가 마르는 시간이다. 둘 모두 시간도 오래전에 바닥난 상태. 흑도 이 바둑을 이기려면 뭔가 '한 건'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153은 크기 자체로만 본다면 참고도 1이 더 크다. 하지만 A의 패(覇)는 흑 쪽이 더 부담스러워 선택하기 쉽지 않다.

157까지 교환을 거쳐 158은 백의 차지가 됐다. 169도 158에 버금가는 큰 곳. 그러나 이 수가 흑의 승기를 날려버린 결정적 문제수였다니 희한한 일이다. 바꿔 말하면 169가 바로 예의 '나중 실수'에 해당했다는 얘기. 그렇다면 흑은 이 국면에서 어디로 달려가야 했을까. 다음 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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