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인물을 다룬 영화 두 편이 잇달아 찾아왔다. 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약했던 게이 인권운동가 하비 밀크의 삶을 그린 '밀크'(구스 반 산트 감독)와 기원전 500년 전 중국의 사상가 공자의 삶을 다룬 '공자-춘추전국시대'(호 메이 감독)다.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했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연기파 스타 숀 펜과 주윤발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밀크'는 하비 밀크의 생애 후반 8년의 이야기다. 보험회사에 다니던 밀크는 40세 생일을 맞아 애인 스콧(제임스 프랑코)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살았던 과거를 반성한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보수적인 카스트로 거리에 작은 카메라 가게를 차린 후, 게이 인권 운동을 벌인다. 영화는 밀크가 동성애자의 리더가 되고, 인권 운동에 투신하고, 정계에 진출해 활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밀크가 미국 사회의 보수적 편견과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게이들의 법적인 권리를 쟁취했고, 어떻게 희망을 심어줬는지를 밀도있게 그린다.
'공자'는 사상가 공자의 모습을 최소화한다. 대신 중국 역사상 최대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를 온몸으로 헤쳐나간 관리, 정치인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공자는 노나라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된다. 이후 진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책략가, 개혁을 주도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한다. 그 때문에 모함과 시기를 받아 노나라에서 쫓겨나 천하를 유랑한다. 물론 고매한 사상자로서의 권위는 잃지 않는다.
두 영화는 인물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삶의 중요한 고비에서 그가 어떤 신념을 갖고 행동했는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영화가 인물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밋밋하거나 교훈적이기 일쑤다. '공자'는 그 덫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밀크'는 공자보다 훨씬 유연하고 정서적이다.
그 차이는 인물 내면의 형상화에 있다. '공자'는 교육적이고 교훈적이다. 위인전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그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훌륭한 행동을 했는지를 열거한다. '밀크'는 밀크가 편견의 벽을 부수는 과정, 동료들과 살을 부대끼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자'에는 살과 피가 흐르는 인간의 모습이 거의 없다. '밀크'는 애인을 갈아치우는 게이와 같은, 다소 꺼림칙한 모습까지 숨김없이 드러낸다. 인물의 멜로 라인도 다르다. 공자의 사랑은 잠깐, 간접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공자는 주체가 아니라, 연모의 대상이다. 밀크의 사랑은 아프고 직접적이다.
더 큰 차이는 '왜?'라는 질문과 대답에 있다. 공자는 왜 제자들과 함께 각 나라를 떠돌았을까. 우리는 그 대답을 영화 밖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밀크는? 그는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흑인, 동양인, 노인 등 아웃사이더들의 삶과 희망을 되풀이 강조한다. 한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인권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이다.
화면에서도 이같은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밀크'는 잦은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다.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은 TV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연출하며 현장감을 더해준다. 좁은 공간에서 고뇌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꽤 실감난다. '공자'는 최근 중국 블록버스터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수만 명의 군사들이 진군하고, 공성전을 벌인다. 새까맣게 날아가는 화살과 불기름 공격 등 스펙터클한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볼거리를 내세운다. '공자'는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로 인해 혼란을 준다.
'밀크'가 빼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정치인으로서의 밀크의 삶이 다소 딱딱하게 그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밀크라는 인물의 내면과 고민, 치열한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고 있다. 그에게 동조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 작품으로 지난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숀 펜의 연기에 대한 칭찬은 더 추가할 필요가 없다. 반면 '공자'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공자의 사상, 인간적인 고뇌를 충분히 알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가 인물의 내면에 얼마나 깊이, 애정을 갖고 들어갔느냐의 문제다. '밀크'와 '공자'는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루고자 하는 영화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대조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