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버리고 이기다

〈총보〉(1~246)=이 바둑 총보(總譜)의 하이라이트는 소비시간이다. 종전 방식으론 둘 다 2시간 59분이지만, 총량시간제로 바뀐 방식에 따르면 합계 7시간 30여 분이 소요됐다. 종국 시간은 6시 33분. 초겨울 창 밖은 검은 커튼을 드리운 듯 캄캄해져 있었다. 둘은 거의 동시(백 136수, 흑 139수) 초읽기에 들어갔고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처절하게 한 몸이 돼 뒹굴었다.

간간이 미스블로를 교환했지만 바둑은 관전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었다. 백이 약간씩 앞서가다 따라잡히고, 다시 벌어진 간격을 좁혀가는 패턴이 반복됐다. 1집 반가량의 미세한 간격을 끝내 메우지 못한 퍄오는 계가를 생략한 채 돌을 거뒀다. 현대바둑이 완성도보다 박진감에 더 점수를 주는 추세를 감안할 때 명국으로 전혀 손색없는 한 판이었다.

지면 사정으로 미뤘던 참고도 하나를 첨부한다. 실전보 132로 참고도 1 이하로 움직이면 중앙을 모두 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초읽기를 눈앞에 두었던 이창호는 면밀한 검토 끝에 꼬리를 떼주고 승리를 지켜냈다. '버려야 이긴다.' 이 바둑 격언이 어긋난 경우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43…40, 230 236…124, 233…13, 246수 끝 백 불계승, 소비시간 백 3시간 59분 54초, 흑 3시간 32분 2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