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스릴러 향수에 빠지고, 디캐프리오 연기에 빠지고…

마틴 스코시지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스릴러를 찍었다고 해서, 이 영화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좋겠다. 18일 개봉할 ‘셔터 아일랜드’는 두어 달에 한 번 극장 가는 관객들에겐 좀 밋밋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좀 본다는’ 이들에겐 무척 흥미롭고 짜릿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 틀림없다. 다시 말해, 원작 소설(살인자들의 섬)의 긴박한
문체와 전개, 충격적인 대반전은 많이 무뎌졌지만, 스코시지의 연출은 말 그대로 명품의 매끈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연방 보안관 테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정신질환을 앓는 중죄인들을 감금해놓은 셔터섬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려고 동료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선착장 한 곳 외에는 육지로 탈출이 불가능한 이곳에서 자식 셋을 죽인 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고, 테디는 그 여자의 감방에서 의문의 쪽지를 발견한다. 셔터섬 관리들은 영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데다, 폭풍우까지 불어닥쳐 테디는 이 섬에 갇힌다. 그는 셔터섬 정신병원에서 모종의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심을 품는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우선 스코시지 감독의 영상 창작법이다. 공포와 신경쇠약, 정신분열, 극도의 긴장 같은 심리상태를 묘사할 때 그의 영상들은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독창적이다. 그는 고전 명작 스릴러들을 차용하거나 발전시켜 주연배우는 물론 관객들마저 그 자체가 감옥인 섬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궁지에 빠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전쟁을 겪은 테디의 환상을 묘사한 장면들은 탄성을 이끌어 낼 만큼 회화적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흥행보다는 평가와 연구를 위해 창작됐으며, 팝콘 든 관객보다는 볼펜 쥔 관객을 위한 영화라 할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주인공이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이나 막판 반전이 주는 쾌감은 별로 크지 않다. 오히려 영화 중후반쯤 "저거 혹시 그런 거 아냐?"하고 어림하게 된다면, 아쉽게도 그 짐작은 맞을 것이다.

두 번째 주목할 것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호연(好演)이다. 이번 영화는 그가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에 이어 스코시지 작품에 네번째 출연한 것이다. 작년 케이트 윈슬렛과 공연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캐릭터에 넋 내준 듯 연기했던 그는 이 영화에서 거의 신내림 경지를 보여준다. 무장한 채 섬에 들어와 맥없이 권총을 빼앗기고 급기야 죄수복을 입은 채 쫓기는 연기까지, 굉장히 인상적으로 소화했다. 실제로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마크 러팔로를 부하직원으로 대동한 역할인데도, 그는 스크린 전체를 장악하고 138분 내내 관객을 압도한다.

맨 처음 두 주인공이 입도(入島)할 때 깔리는 무겁고도 기괴한 음악을 비롯해,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활용한 음악도 무척 영화적이다(낮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이 어쿠스틱 악기들은 어떤 효과음보다 기괴하게 들린다).

이런 모든 감상포인트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마지막 반전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다. 게다가 그 반전이 쾅, 떨어지지 않고 중후반부터 고무락거리며 새는 것은 확실히 단점이다. 반전을 알고 난 뒤 "그럼 아까 그건 뭐야?" 하고 따져보면 수상한 장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자기소개서에 '취미: 영화감상'이라고 쓸 정도의 관객들은 대개 만족할 것이다. 이건 정말 감상용(感想用)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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