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사라진 野性

〈제10보〉(137~145)=1년 전 이맘때만 해도 중국 팬들은 구리(古力)를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했으나 어느새 쿵제(孔杰)에게 '충성'하는 분위기다. 최근 농심배에서도 구리는 이창호의 돌진을 막지 못해 역적(?) 신세가 돼버렸다. 대신 쿵제를 농심배 대표로 안 뽑은데 대한 성토(聲討)가 중국 바둑 사이트들을 뒤덮고 있다. 조석(朝夕)으로 변하는 게 민심이라더니 바둑계라고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백이 △로 둔 장면. 흑은 144까지 얌전히 정리한다. 국지적으론 지극히 정상적인 마무리. 하지만 문제는 이 수순으로 흑의 '무난한 패배'가 굳어졌다는 데 있다. 최규병 九단은 참고도를 제시했다. 흑5로 패(覇)를 집어넣어 옥쇄(玉碎)로 나갔으면 아직 승패 불명이었다는 것. 그런 것을 144까지 모든 팻감을 스스로 없애버렸다. 형세판단 능력이 감퇴되면서 야성(野性)마저 사라진 것일까.

하변에도 백의 팻감은 없다. '가'로 봉쇄되고 백선(白先)으로도 하변 흑이 멀쩡함을 다음 보에서 증명할 예정이다. 그나저나 145, 유창혁은 이 수를 최후의 패착으로 지목했다. 이날 장장 9시간 가까이 생중계 해설을 맡았던 유창혁은 어떤 대안을 갖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