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스타 없어도 무대엔 웃음이 철철…

이상한 국제영화제였다. '웃음과 평화(Laugh & Peace)'를 주제로 한 경쟁부문 출품작 26편 중 절반 이상이 일본 영화였고, 그 중 9편이 코미디였다. 부산영화제 예산의 약 90%(7억5000만엔·약 92억원)을 쓰는 오키나와국제영화제의 레드 카펫 행사에 세계적인 스타는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만화 '짱구는 못 말려'의 '크레용 신짱' 인형을 뒤집어쓴 사람, 불참한 배우의 실물 크기 사진을 든 사람, 여장을 한 남자 코미디언들이 등장했다. 화려한 옷을 입었으나 다들 "다레(누구야)?"하며 의아해했던 여자들은, 오키나와 유명 주점의 호스티스들이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은 오키나와 출신 아이돌 가수 아무로 나미에와 '7급 공무원'의 주연배우 강지환 정도였다.

지난 24~28일 일본 최남단 섬인 오키나와(沖繩)현 기노완(宜野灣) 해변에서 열린 제2회 오키나와국제영화제는 철저히 지역 주민들과 일본 코미디언들이 어울려 노는 축제였다. 유명한 스타를 모셔오는 덴 관심이 없었고, 부산영화제의 야외상영관을 본떠 설치한 백사장 무대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영화제에 참석한 코미디언들은 양복이나 드레스를 빼입지 않고 영화 속 분장을 했다. 개막식과 기자회견 말고는 공식 행사가 없다시피 한 다른 국제영화제들과 달리, 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랫동안 관객들과 만났다. 일단 레드 카펫 길이가 300m나 됐다(부산은 100m 미만). 개막작인 '야지마 미용실'의 주연배우 세명이 이 카펫을 걸으며 관객들과 만난 시간은 20분을 넘었다. 개막식장에 도착한 이들은 무대로 올라가 5분 정도 인사를 했고, 개막식이 끝나자 다시 영화 상영관으로 옮겨 약 20분쯤 무대 인사를 했다. 이 무대 인사는 일종의 짧은 공연이었다. TV 속 연예인들을 실물로 보기 힘든 지역 주민들은 마냥 신나서 웃고 박수를 쳤다.

이 영화제의 특이한 섹션 하나는 '월드 와이드 래프(World Wide Laugh)' 부문. '코믹 동영상 경쟁'이라고 할 만한 이 부문에는 화질이나 주제, 출품 자격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 단 한 가지 규정은 "번역하지 않고도 세계 사람들을 2분 내에 웃길 것"이다. MBC 개그프로그램 '하땅사'의 '나 이런 사람이야'가 초청된 부문이다. 총 401편의 동영상이 경쟁했으며, 이 중에는 휴대폰 동영상도 꽤 있었다.

경쟁부문에 출품된 일본 코미디는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달라 '영화'로 보기엔 어려웠다.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未知)와의 조우'를 패러디한 일본 코믹영화 '무지(無知)와의 조우'는 개그맨 한명이 실제 외계인을 만났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100분짜리 몰래 카메라였다.

이 영화제는 주최사인 일본 최대 코미디 기획사 요시모토흥업(吉本興業)의 파워를 보여주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1912년 창업한 요시모토는 소속 코미디언 1000명, 연습생 1000명에 이르는 '코미디 그룹'이다. 파친코 기업인 교라쿠산업(京樂産業)이 메인 스폰서로 참여한 이 영화제는 코미디 영화와 동영상을 상영하고 TV 코미디쇼 마켓을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코미디 영화제'다. 오사키 히로시 오키나와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휴대폰 영상 화질이 얼마나 좋아질 것이냐가 우리 영화제의 관건 중 하나"라며 "그런 뜻에서 '영화제'라고 하기엔 좀 이상한 영화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