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평화로운 出發

〈제1보〉(1~19)=결승 1국은 드물게 보는 '조용한' 전쟁이었다. 양측의 견고한 토치카 위로 간간이 섬광만 번쩍였다. 그 틈새로 포성(砲聲)만 은은할 뿐 전차(戰車)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 이세돌과 구리(古力)가 펼쳤던 지난해 결승은 얼마나 요란하고 난폭했던가. 그러나 이창호와 쿵제도 필요할 때는 누구 못지않은 투사(鬪士)가 되기도 한다. 이틀 뒤 벌어진 이 바둑에서 둘의 숨겨진 '싸움 본능'은 고스란히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초반은 평화롭다. 11까지, 밥 짓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골의 초저녁 같은 정경이다. 아무도 이 바둑이 훗날 전판을 휘돌며 군화(軍靴)와 총검에 밟히고 찢기리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오직 대오(隊伍) 정연한 질서 속에 반듯한 '규격품'들만이 차곡차곡 자리 잡아가고 있다.

13의 협공, 14의 되협공도 몇 년 전부터 유행을 타고 있는 정석 과정. 18로 젖혔을 때 첫 기로를 맞는다. 19로는 최근 참고도 1로 뻗는 수가 개발됐다. 5까지 흑이 외곽 주도권을 잡는 모양새지만 다소 허술해 백도 싸울 만하다. 쿵제는 잠시 고심하다 참고도를 버리고 19의 호구(虎口) 자리 급소를 택했다. 바둑판 어느 구석에서 새벽 닭 우는 소리라도 들려올 듯한 초저녁 마을 평화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