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攻守 겸용

〈제3보〉(33~46)=웬만한 승부엔 이른바 '원정 핸디캡'이란 게 따라다닌다. 어웨이 경기를 갖는 쪽은 시차(時差)와 여독(旅毒)에 시달리게 마련. 하지만 바둑은 약간 다른 승부종목이다. 스포츠처럼 관중 응원, 심판 판정의 불리함 등에서 평등하기 때문. 이번 결승서 쿵제는 대국장인 한국기원 근처에 투숙해 집에서 직접 차를 몰고 온 이창호보다 오히려 더 유리했다. 사소한 뒷얘기들이지만, 결과가 안 좋았고 보니 별의별 기억까지 다 떠오른다.

33을 선수(先手)한 뒤 달려간 35의 자리가 너무 좋다. 이 수는 훗날 '가'로 치받는 맛까지 노리고 있다. 36 때 37은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의 의미가 더 큰 한 수. 이 수를 게을리하면 참고1도의 수순으로 우상귀 흑이 곤마(困馬)화 한다. 38(16분)로 참고2도 1의 침입은 무리. 10까지 주도권이 흑에게 넘어간다(나중 A의 귀살이 맛도 남는다).

42가 뜻밖의 한 수. 백이 45자리에 두고 흑이 '나'로 달리는 것으로 예상하던 검토실이 머쓱해졌다. 이창호는 실속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45의 탈출은 너무도 당연. 46으로 추격해 마침내 중원(中原)이 본격적인 싸움터로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