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웅의 '치명적 매력' 예술가라면 반할 수밖에

"전시실 2층으로 올라서니 클림트의 '키스' 앞에 가장 많은 관람객이 운집해 있다. 다행이다. '유디트' 앞은 훨씬 한산하다. 검은 머리가 비현실적으로 크게 부풀려져 있고 그 배경으로는 평면적 문양들이 금색으로 장식되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그리고 눈. 붉게 상기된 볼과 대조적으로 눈은 뜨는 듯 마는 듯 세상을 내려보고 있다.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직전, 그 느낌의 근원을 탐색하려는 눈빛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장편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자살청부업자인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의 미술관으로 향합니다. '유디트'라는 별명의 여성에게 사건을 의뢰받은 뒤, 문득 유디트를 그렸던 화가 클림트의 나라로 가고 싶어졌다는 것입니다. 고객과의 일이 끝나면 언제나 여행을 떠나곤 하던 주인공은 전시실에서 "내 의뢰인 유디트와 클림트의 유디트. 두 여자가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통에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구약성서의 외경(外經)에는 아시리아의 군대가 유대를 침략하자, 유대인 과부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처소에 잠입해서 그 목을 쳤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장(倭將)과 함께 촉석루에서 짙푸른 남강으로 뛰어든 논개와 같은 우국적인 이야기이지요.

약자인 피침략국의 여성이 강자인 남성 적장의 목을 벴다는 유디트의 일화에는 성(性)과 죽음의 이미지가 한데 겹쳐 있어 후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카라바조와 조르조네를 비롯해 수많은 화가는 칼을 들고 있는 유디트와 목이 잘려나간 홀로페르네스의 고통을 극명하게 대비시켰지요.

하지만 클림트는 적장의 고통 따위는 캔버스에서 보일 듯 말 듯 추방해버린 뒤, 나른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유디트의 표정만을 정면에 부각시켰습니다. 화가 특유의 황금빛 색채감과 함께 말이지요. 이 클림트의 그림은 다시 후배 예술가들을 사로잡기에 이릅니다. 김영하는 소설 주인공의 입을 빌려 "클림트는 유디트에게서 민족주의와 영웅주의를 거세하고 세기말적 관능만을 남겨두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유디트의 활약상은 악보에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계(四季)'의 작곡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비발디(Vivaldi)는 1716년 오라토리오 '유디트의 승리'를 작곡했습니다. 당시 터키의 코르푸 섬 침공을 베니스가 격퇴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었지요. 당초 성서에 기초한 종교음악인 오라토리오로 작곡했지만, 극적(劇的) 내용이 다분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오페라로도 즐겨 공연합니다. 5일부터 충무아트홀에서도 비발디의 이 작품을 오페라 무대에 올립니다. 애국과 관능, 성과 죽음은 이렇듯 속세에서는 얽혀 있게 마련입니다.

▶비발디의 '유디트의 승리', 5~7일 서울 충무아트홀, (02)587-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