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엉터리手

〈제5보〉(63~74)=프로들의 바둑은 몸의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고행의 장정이다. 흡사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열사(熱砂)의 사막을 횡단하는 것에나 비유할까. 지쳐 쓰러지는 사람이 반드시 몇 명은 등장하듯, 한 판을 마치기까지 100여 수를 두는 동안 최소 한두 번은 스스로도 이해 못 할 맹점(盲点)을 범하곤 한다. 천하의 고수(高手)들도 예외가 아니다.

검토실이 63을 '엉터리 수'로 규정했다. 같은 프로들이 동료기사가 둔 수를 이렇게 원색적으로 매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참고1도를 보자. 흑1 때 백이 2로 지켜도 흑이 A로 침투하면 잡을 수 없다. 백이 먼저 64로 귀를 지키면 흑은 63 아닌 '가'의 붙임으로 간단히 좌변을 깬다. 그런 것을 백에게 64를 거저 두게 했으니 누가 봐도 이적수(利敵手)였다.

65에 백은 66, 68로 잽싸게 좌변을 통째로 접수한다(66이 없으면 흑 '가' 때 차단된다). 그러나 68로는 참고2도 1, 2를 먼저 교환하고 뒀어야 완벽했다. 흑2로 3은 백2로 씌워올 때 골치 아프다. 결국 73까지 하변이 철벽화하면서 이 일대 흑집의 경계선이 이 바둑의 승패를 결정하는 국세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