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시네마 오디세이 - '비밀애'
입력 : 2010.04.05 13:50
| 운명과 금기 복잡…그리고 '막막한 엔딩' |
'비밀애'(감독 류훈)는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부정적인 의미에서다. 감독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운명적인 사랑, 금지된 사랑, 운명과 금기가 복잡하게 얽힌 비극적인 사랑? 혹은 인간의 운명 그 자체? 대답은 엔딩의 하얀 눈밭처럼 막막하다.
젊은 연이(윤진서)는 남편의 병간호에 지쳐 있다. 남편 진우(유지태)는 결혼한 지 두 달만에 식물인간이 됐고, 연이는 번역 일로 밥벌이하면서 남편을 돌본다. 그때 외국에서 진우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진호(유지태)가 돌아온다. 연이는 진호에게 호감을 느끼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감독의 의도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난다. 외모와 목소리가 똑같은 쌍둥이 형제와 한 여인.... 쌍둥이 형제는 이름마저도 비슷하다. 분명하게 발음하지 않으면, 누구를 호명하는 것인지 불분명해진다(실제로 윤진서의 발음은 매우 흐릿하고, 심지어 잘못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유지태는 1인2역이다. 이 정도면 영화의 복선으로 충분하고도 넘친다.
이후 영화는 잘 흘러간다. 연이와 진호는, 금지된 혹은 부도덕한 사랑을 하는데도, 거의 갈등하지 않는다. 정반대다. 한 집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든다. 마치 깔끔한 멜로영화 같다. 연이는 진호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이 내 운명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그래도 되나?"라는 도덕성은 시빗거리가 아니다. 운명적인 사랑이니까. 문제는 그 사랑의 과정이다. 관객도 그들의 사랑을 안타깝게, 비극적으로 느끼느냐다. 대답은 부정적이다. 인물들이 태평한데 관객이 대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질문을 바꿔보자. '비밀애'는 누구 얘기인가. 일란성 쌍둥이 형제를 사랑한 여인 연이, 한 여인을 동시에 사랑한 쌍둥이 형제 혹은 세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객관적 성찰? 검은 화면 위로 크레딧이 올라가고 한참이 지나도 대답은 역시 막막하다. 의문부호만 나부낀다.
영화는 연이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진우가 깨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진우와 진호의 신경전과 질투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이야기의, 갈등의 중심축이 흔들린다. 여기에 연이를 진짜로 구한 게 누구인지, 진우를 찾아왔던 여인의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지와 같은 모호한 상황이 겹쳐지면서 영화는 혼란스러워진다. 멜로와 미스터리의 어정쩡한 결합이다.
질문은 더 이어진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진우는 어떻게 갑자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한 여인의 입맞춤에 발가락이 살짝 움직였던 진우이고 보면,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우는 아내 연이의 애절한 애무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진우는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직후 어떻게 진호와 연이의 사랑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영화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물의 평면성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비밀애'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사랑, 운명, 비극 등의 단어로 설명해야 하는 영화다. 당연히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정밀하게 묘사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의 몸짓만을 보여준다. 물론 감독은 인물의 내면을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인물의 감정은, '병속의 새'와 같다.
디테일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부를 향한 연이 엄마의 금지된 사랑이 대표적이다. 그 의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일차원적이다. 대역임이 한눈에 드러나는 인물들, 진우와 진호가 티격태격하다가 구름다리에서 동시에 추락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질문 하나가 또 떠오른다. 100m는 넘어보이는 높이의 산속 구름다리에서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카메라 앞에서 관객은 영화에 몰입할 수 없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거나 "조금 더"의 차이를 강조하는 CF 카피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래서다. 열린 결말의 의미가 퇴색된다. 감독의 의도가 아니라, 떠밀린 듯한 느낌마저 준다. 영화는 편지의 발신자, "당신"이라고 말한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모호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뻔한 '열린 결말'은 역효과만 나타낼 뿐이다.
< 임정식기자 dada@sportschosun.com>
젊은 연이(윤진서)는 남편의 병간호에 지쳐 있다. 남편 진우(유지태)는 결혼한 지 두 달만에 식물인간이 됐고, 연이는 번역 일로 밥벌이하면서 남편을 돌본다. 그때 외국에서 진우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진호(유지태)가 돌아온다. 연이는 진호에게 호감을 느끼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감독의 의도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난다. 외모와 목소리가 똑같은 쌍둥이 형제와 한 여인.... 쌍둥이 형제는 이름마저도 비슷하다. 분명하게 발음하지 않으면, 누구를 호명하는 것인지 불분명해진다(실제로 윤진서의 발음은 매우 흐릿하고, 심지어 잘못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유지태는 1인2역이다. 이 정도면 영화의 복선으로 충분하고도 넘친다.
이후 영화는 잘 흘러간다. 연이와 진호는, 금지된 혹은 부도덕한 사랑을 하는데도, 거의 갈등하지 않는다. 정반대다. 한 집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든다. 마치 깔끔한 멜로영화 같다. 연이는 진호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이 내 운명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그래도 되나?"라는 도덕성은 시빗거리가 아니다. 운명적인 사랑이니까. 문제는 그 사랑의 과정이다. 관객도 그들의 사랑을 안타깝게, 비극적으로 느끼느냐다. 대답은 부정적이다. 인물들이 태평한데 관객이 대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질문을 바꿔보자. '비밀애'는 누구 얘기인가. 일란성 쌍둥이 형제를 사랑한 여인 연이, 한 여인을 동시에 사랑한 쌍둥이 형제 혹은 세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감독의 객관적 성찰? 검은 화면 위로 크레딧이 올라가고 한참이 지나도 대답은 역시 막막하다. 의문부호만 나부낀다.
영화는 연이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진우가 깨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진우와 진호의 신경전과 질투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이야기의, 갈등의 중심축이 흔들린다. 여기에 연이를 진짜로 구한 게 누구인지, 진우를 찾아왔던 여인의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지와 같은 모호한 상황이 겹쳐지면서 영화는 혼란스러워진다. 멜로와 미스터리의 어정쩡한 결합이다.
질문은 더 이어진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진우는 어떻게 갑자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한 여인의 입맞춤에 발가락이 살짝 움직였던 진우이고 보면,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우는 아내 연이의 애절한 애무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진우는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직후 어떻게 진호와 연이의 사랑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영화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물의 평면성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비밀애'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사랑, 운명, 비극 등의 단어로 설명해야 하는 영화다. 당연히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정밀하게 묘사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의 몸짓만을 보여준다. 물론 감독은 인물의 내면을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인물의 감정은, '병속의 새'와 같다.
디테일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부를 향한 연이 엄마의 금지된 사랑이 대표적이다. 그 의도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일차원적이다. 대역임이 한눈에 드러나는 인물들, 진우와 진호가 티격태격하다가 구름다리에서 동시에 추락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질문 하나가 또 떠오른다. 100m는 넘어보이는 높이의 산속 구름다리에서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카메라 앞에서 관객은 영화에 몰입할 수 없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거나 "조금 더"의 차이를 강조하는 CF 카피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래서다. 열린 결말의 의미가 퇴색된다. 감독의 의도가 아니라, 떠밀린 듯한 느낌마저 준다. 영화는 편지의 발신자, "당신"이라고 말한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모호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뻔한 '열린 결말'은 역효과만 나타낼 뿐이다.
< 임정식기자 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