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속에 숨을 불어넣다

중국 베이징의 예술촌 차오창디(草場地)에 자리 잡은 갤러리 'MK2 아트 스페이스'. 거대한 흰색 레고처럼 사각의 형태가 강한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면 흰 벽을 채운 기하학적 도형이 눈에 들어온다. 갤러리 안에는 소규모 카페가 있는데, 카페의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벽의 기하학적 도형과 대구(對句)를 이루는 듯하다.

홍승혜의 개관전 《프레임의 모든 것(All about Frames)》 작품은 벽을 채운 기하학적 도형뿐 아니라 카페까지 확장돼 있다. 작가는 기하학적 도형 작품부터 의자와 테이블·조명까지 직접 디자인해 평면에서 시작한 작업을 3차원 공간으로 펼쳐보였다. 작가는 "전시를 확장시켜 프레임에 대한 자유롭고 다양한 사유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MK2 아트 스페이스'라는 공간이 작업이 출발한 프레임이고, 카페 공간은 실재적인 공간을 운영해보고자 했던 작가에게 신선한 틀을 제공했다.

'유기적 기하학'이란 작품 소재로 널리 알려진 홍승혜는 주로 평면에 머물던 작업을 이번에는 실생활이라는 3차원으로 입체화시켰다. 컴퓨터에서 그린 기하학적 도형을 출력해 벽면에 붙이고, 모니터 속에 그렸던 도형들을 의자나 테이블로 만들어 구체적인 생활로 살려낸 것이다. 작품을 담는 액자(프레임)에서 시작해 벽-카페-갤러리-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면서 '도대체 프레임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작가는 "모든 것에는 프레임이 필요하다"면서 "직접적이면서도 간접적인 프레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홍승혜 작품의 출발인 기하학적 도형들은 극도의 절제와 단순화를 통해 강한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다. 때문에 선(線)으로 구성돼 있는 듯한 도형들은 튀지 않으면서도 공간에 묻히지 않고 독립적인 힘을 갖는다. 지난달 27일 열린 전시 오프닝에 관람객이 들어오면서 홍승혜의 기하학적 추상 세계는 또 다른 차원의 유기체로서 '생명'을 얻었다. 인간의 움직임과 기운이 창의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전시 기획자인 전혜연씨는 "작가의 유기적 기하학과 공간이 인간을 통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됐다"고 말했다.

작가는 전시장 2층에 말레비치(Malevich ·1878~1935)와 몬드리안(Mondriaan·1872 ~1944)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작품을 걸었다. 특히 러시아의 절대주의(Suprematism)를 이끌며 극도로 간략화된 기하학적 도형을 통해 순수감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말레비치에 대한 작가의 존경은 각별하다.

이번 전시는 작품 내용과 함께 한동안 진출이 뜸했던 베이징에 한국 갤러리가 새로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MK2 아트 스페이스'를 개관한 선승호 대표는 "아시아가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베이징이 미국의 뉴욕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베이징에 갤러리를 냈고 한국과 중국 작가를 상대 나라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 대표는 "차오창디는 중국의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스튜디오를 세우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면서 "중국의 유명 갤러리 30여개가 들어선 지역"이라고 소개했다. 개관식 오프닝에 참석한 한 미술 관계자는 "차오창디 같은 예술촌에 한국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한국과 중국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이어진다. www.mk2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