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는 백자로되 '라인'이 다르다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LVS에서 시작된 도예전 《퇴적》에는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 중인 도예가 황갑순 서울대 미대 도예전공 교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황 교수의 '화병(花甁) 시리즈'는 맑은 물가에서 캐낸 조약돌같이 밀도 높은 흰색과 함께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매끈한 질감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들은 물레로 성형(成形)한 다음, 부분을 잘라 절단면에 푸른색을 입혀 다시 성형하는 과정을 거쳤다. 요즘 가장 널리 쓰이는 무늬 중 하나인 푸른 줄무늬를 백자 속에 조화롭게 녹여냈다. 그래서 백자(白磁)의 깊이를 갖추면서 현대적인 날렵함을 보이고 있다. 옛 도공(陶工)처럼 물레를 사용하지만 물레 성형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절단과 성형 등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가마에서 꺼낸 뒤에는 물레에 들이는 시간의 10배 가까운 시간을 연삭(硏削) 과정에 투입해 매끄러운 질감을 찾아냈다. 전통을 이으면서도 전통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작가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모던 백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퇴적》전의 특징은 황 교수를 비롯해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함께 작품을 전시하는 점이다. 김보경·김성철·문평·박미선·박정홍·이가진·이기욱·이민수·이예린·이인화 등 서울대 도예과 대학원생과 졸업생들이 작품을 내놓았다.

이번 전시를 마련한 갤러리 LVS의 이원주 대표는 "조선백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지만 해외에서 읽히는 전문서적에는 한국도자기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황 교수와 제자들의 작품을 보고 이들의 치열함에 반했다"고 밝혔다.

황갑순 교수는 제자들과 함께 오랜 실험을 거쳐 도자기에 바르는 유약에 대한 데이터를 8000개 가까이 산출해냈다. 과거처럼 작품을 만들고 걸작이 나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미감(美感)을 추구하면서 치밀한 과학적 데이터를 구축한 것이다.

황 교수와 제자들은 휴일인 지난 4일에도 서울대 도예과 작업실에 나와 작품에 매달렸고, 가스 가마에서 꺼낸 일부 작품에 금이 간 것을 보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작업실에는 작품 완성에 대한 열정과 근기(根氣)로 가득했다. 황 교수는 "제자들의 도예 작품이 하나같이 단단하고 신선한 것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이에 함몰되지 않고 현대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들이 도예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4일까지 열린다. (02)3443-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