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LG배 세계기왕전] 외길 列車

〈제6보〉(75~95)=바둑은 절대 정숙(靜肅)을 요하는 멘탈 게임. 그래서 대국 촬영은 아무 때나 허용되지 않는다. 오전과 오후 대국 시작 후 약 10분간만 포토 타임으로 설정한 이유다. 하지만 사진기자들은 쿵제의 오후 첫 착점 모습을 끝내 못 잡고 퇴장해야 했다. 75를 놓는데 20분이나 소요됐기 때문. 점심시간 60분을 포함하면 무려 80분 만에 놓인 셈이다.

백의 오전 마지막 수(△)가 하변 삭감 교두보였다면, 오후 첫 점인 75는 중앙 백 전체를 압박해 하변 흑집을 극대화하겠다는 강인한 승부수다. 그리고 기름 탱크에 성냥을 그어 던진 듯, 엄청난 기세의 불길이 전판으로 번져가는 도화선이 됐다. 77은 과연 '미끼'일까, '본체(本體)'일까. 백은 78로 과감하게 끊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미끼를 문 셈이었다. 참고도 1로 틀을 잡고 5까지의 유연한 대응이 나았으리란 결론. 다소 앞섰던 백의 형세가 여기서부터 나빠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둘은 돌아올 수 없는 외길 열차에 동승했다. 88 두들기고 94까지 회돌이친 뒤 95로 끊은 데까지 예정코스. 문제는 이제부터다. 무지막지한 해머 2개가 허공에서 맞부딪치고 있다. (9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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